최근 교사 초년생인 어느 젊은 여교사의 안타까운 자살 소식이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자살원인에 대해서 아직 밝혀진 것은 없지만 한 학부모의 지속적인 괴롭힘이 있었다는 정황 때문에 교육계는 크게 술렁이고 있다. 이 안타까운 사건 이후 전국교사 3만여 명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집회를 열어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교육자의 참담한 심정을 절절히 호소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학생인권조례에 지나친 조항이 있어서 교사의 정당한 지도와 훈육조차 보호받지 못하고 교사에게 좌절감과 무력감을 안겨주고 있다는 교육단체의 비판이 주로 보도되더니, 학부모의 과도한 자식 사랑과 그에 따른 악성 민원과 갑질로 비난의 화살이 향하고 있는 것 같다. 소설가 김훈은 우리나라 학부모의 ‘내 새끼 지상주의’가 공교육을 죽이고 있다고 썼다. 그런데 사실 학부모의 유난한 자식 사랑은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필자의 과거 학창시절을 회상해 보면 당시 교실의 권력은 교사 편이었고, 학생은 과도한 체벌과 규제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으며, 학부모는 교사의 환심을 사려고 전전긍긍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민주화 이후 학생들의 인권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1990년대 학생인권조례가 몇몇 교육청에서 제정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교실 내에서 교사의 권위주의는 점차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교실의 민주화를 통해 학생이 자율성과 인권을 회복하고 개성을 마음껏 발휘하여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나타난 것이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공교육과 교사의 추락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교실을 둘러싸고 교사, 학생, 학부모의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할 때 갈등이 단지 권력을 나누어 갖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전교조와 같은 진보적인 세력이 주장하듯이 권력을 교사에게서 학생과 학부모에게로 나누어주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민주화란 상호 존중과 관용을 바탕으로 한다. 먼저 교사는 지식을 독점하고 그 지식을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시혜적으로 베푼다는 전통적인 교육관이 변화되어야 한다. 교사와 학생이 교실에서 인격으로 만나서 지식과 지혜를 공유한다는 상호 학습의 교육관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좋은 교육은 질문하는 데서 시작된다. 교사는 학생에게 질문함으로써 학생이 주도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하고, 학생은 질문함으로써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교육은 대등한 인격과 인격의 만남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민주화는 또한 분쟁을 해결하는 합리적인 절차와 제도의 정비를 통해 이루어진다. 먼저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 불완전한 사람들임을 인정해야 한다.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학생이나 인격이 부족한 학부모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또 지나친 자식 사랑으로 인한 과도한 교육열이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문제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말 큰 문제는 그런 학생과 학부모에게 무방비로 휘둘리지 않도록 하는 절차와 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학생의 무한한 자율추구성향, 학부모의 자식 사랑, 교사의 인권이 서로 충돌할 때 어느 하나를 희생하지 않고서 조화와 균형을 가져올 수 있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일부 진보 운동권처럼 권력의 배분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교사, 학생, 학부모의 정당한 요구를 인정하고 그 위에서 대화와 소통이 이루어질 때 진정한 교실의 민주화가 실현되지 않을까 한다.
김완진 장로
• 소망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