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하나님 생명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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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려받은 재산도 없이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 태어나 조상들의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가난 속에서 살았습니다. 농사철에는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하고, 초봄이나 겨울철 농사일이 없을 때는 동네 서당에서 한문 공부를 했는데 그만 3년을 쉬는 바람에 중학교 진학을 못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쌀 한 가마니 값을 빚을 내어 중학교에 보내 주셔서 기차로 읍내까지 다니면서 졸업은 했지만 고등학교 진학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국가에서 ‘대여장학금제도’(3년, 3만 원)라는 것을 만들어 농업고등학교를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유년 시절 배웠던 한문 기초 실력이 도움이 되어 고등학교 3년을 졸업하고 정말 은혜로 국가 공무원 5급(현, 9급)에 합격하여 1967년 5월 15일 첫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직장 생활 중 1969년도에 갑작스럽게 폐결핵 진단을 받았으나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73년도에는 급성 폐결핵으로 광주 기독병원에 입원하여 오른쪽 폐절제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술 직전 의사 선생님께서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셨던 기도가 늘 생각납니다. “하나님, 주님의 은혜로 이 환자의 생명을 책임져 주시옵소서! 치료해 주시옵소서!”라는 간절한 기도 덕분에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깨어 보니 가장 처음 든 생각이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을 살려주셨구나!’라는 마음과 베풀어주신 은혜를 경험하였습니다.

모든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여 고향집으로 내려가 회복하고 있던 기간에 가까이 있는 보성 남부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걸음이 교회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한 주 한 주 은혜를 경험하며 다니던 중 교회의 피아노 반주소리가 정말 간절히 사무치게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건강은 차츰차츰 회복되고 있었고, 그때 마침 전도사님께서 교회 피아노 반주하는 자매가 있다며 결혼 상대로 소개하였습니다.

‘폐결핵 환자인 나에게 결혼이라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은 이 일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3년이 지나 건강도 회복되고 기적적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고, 광주로 발령을 받아 좁은 셋방살이 속에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들 둘을 낳아 잘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든 순간 순간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아내 송시자 권사의 내조였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나 같은 죄인이 무엇이라고 수술에서 기도를 받고 그 작은 믿음 가지고 살아오면서 건강도 주시고 장로라는 직분까지 주셔서 오늘까지 살아오게 되었습니다.

저같이 못난 사람이 하나님께 무엇으로 어떻게 은혜를 보답할까 늘 생각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직장 주셔서 감사하기에 한달 치 월급도 드리고, 건강 주셔서 감사하기에 새벽 제단을 쌓고 있으며, 앞으로도 믿음을 행동으로 잘 실천하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절대적 순종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안병식 은퇴장로
<광주무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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