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이스라엘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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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성지순례를 다녀오면서 신앙적으로 많은 것을 깨닫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스라엘 여러 지역을 방문하는 동안에 현재 이스라엘 사람들이 당면하고 있는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 여리고와 베들레헴과 같은 서안지구를 여행하면서 복잡한 국내정치와 유대와 아랍 간의 뿌리 깊은 갈등에 대해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 현재 안고 있는 딜레마의 근원은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8년 서구 열강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유대 국가가 팔레스타인지역에 세워지고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았지만, 처음부터 주위 아랍국가들과의 갈등을 피할 수가 없었다. 1948년부터 수차례의 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사활을 걸고 싸운 이스라엘은 모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특히 1967년 6일 전쟁이라고도 부르는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골란고원과 요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전격적으로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웨스트뱅크라 불리는 서안지구는 예루살렘 구시가지와 여리고, 베들레헴, 헤브론 등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으로 고대 이스라엘의 영토를 대부분 회복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서안지구로 인해 엄청난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서안지구를 자국 영토로 편입함으로써 고토회복을 완성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지역의 대다수 주민이 팔레스타인인이므로 이 지역을 영토로 편입하게 되면 이스라엘 전체 인구에서 팔레스타인 인구가 절반을 넘게 되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유대 국가는 팔레스타인인에게 정부를 넘겨주어야 하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결국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인종차별국가가 되거나 아니면 영토를 포기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직면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 정부는 서안지구를 점령지로 남겨두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치하도록 허용하는 정책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동시에 이 지역에 유대인 인구의 유입을 위해 지속적으로 유대인 정착촌을 서안지구 내에 건설하는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정착촌을 둘러싸고 기존 팔레스타인 주민과의 끊임없는 마찰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서안지구 내의 유대인 정착촌 건설은 유엔과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을 뿐 아니라 국내 정치적으로도 심각한 갈등을 초래하였다. 현재 수상인 네타냐후가 이끄는 보수 우파 연합 정부는 극우 민족주의 정파의 요구에 따라 유대인 정착촌 건설에 따른 아랍인의 인권침해와 분쟁소지를 국회 입법으로 봉쇄하려고 추진하는 반면, 대법원은 의회가 제정한 법률이 위헌이라고 판결함으로써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네타냐후 정부가 대법원의 이러한 판결을 무력화하는 법률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려고 하는 과정에서 야당과 지식인 그리고 젊은 유권자들이 거리로 나가 시위를 벌이기에 이르렀다. 해외에서 새로 유입된 젊고 교육받은 유대인들은 자유주의적 성향으로 네타냐후 정부가 민주주의를 파괴한 독재 정부라고 비판한다. 이스라엘은 내란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할 정도로 국론의 분열이 심각하다. 

결국, 이스라엘은 민주주의, 유대 국가, 영토 중 어느 하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딜레마에 처했다고 하겠다. 솔로몬의 지혜로운 판결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현대적인 유대인 도시 텔아비브와 갈릴리호숫가 아랍 도시 티베리아스의 극명한 대조가 보여주듯이, 이천년에 걸쳐 유럽 문명에서 자라온 유대민족과 아직도 중세의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랍인과의 공존은 참으로 어려운 난제라는 것이 필자의 소감이다.

김완진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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