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리더]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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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후기의 선비 이옥(李鈺)은 거미를 의인화한 ‘지주부(蜘蛛賦)’라는 우화(寓話)를 통해 오늘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큰 깨우침을 주고 있다.

어느 여름날 이옥 선생이 저녁 서늘해질 무렵 뜰에 나가다가 처마 끝에 거미 한마리가 거미줄을 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선생이 지팡이를 들어 거미줄을 걷어내려 하자 거미줄 위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내 줄을 짜서 내 배를 채우려고 하는데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게 해를 끼치는 거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거미였다. 이옥 선생이 노하여 거미에게 말했다. “요상한 거미줄을 설치하여 생명을 해치는 것은 벌레들의 적이다. 나는 너를 제거하여 다른 벌레들에게 덕을 베풀겠다.” 그러자 거미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반문했다. “어부가 그물을 설치하여 물고기가 걸려드는 것을 보고 포악한 짓을 일삼는다고 말할 수 있겠소?” 거미는 이옥 선생에게 자기의 그물에 걸려드는 벌레들의 행태를 하나씩 설명하였다.

“나비는 방탕한 자라서 분단장을 해서 세상을 속이고, 번화한 것을 좋아하여 쫓으며, 흰 꽃, 붉은 꽃만 편애하오. 그래서 내 그물에 걸리는 것이오. 파리는 소인배라서 술과 고기에 맛이 들려 제 목숨이 중한 것을 잊고 이익을 쫓다가 내 그물에 걸린 것이오. 매미는 청렴 정직하여 선비처럼 보이지만 제 울음소리가 좋다고 스스로 자랑하며 시끄럽게 울어대다 내 그물에 걸린 것이오. 벌은 마음이 비뚤어진 놈이라, 제 몸에 꿀과 칼을 지니고선 봄꽃을 탐내다 내 그물에 걸린 것이오. 모기는 가장 엉큼한 놈으로 낮에는 숨고 밤에는 나타나 사람의 혈액을 빨고 다니다 내 그물에 걸린 것이오. 잠자리는 품행이 방정맞아 촐랑거리며 제자리에 눌러있지 않고 이리 저리 왔다 갔다 날아다니다가 내 그물에 걸린 것이오. 그 외에도 나방은 재앙(災殃)을 즐기고, 반딧불은 활활 타오르는 듯 과장하고, 하늘소는 감히 하늘이란 이름을 몰래 훔쳐서 그 이름을 자기처럼 쓰다가 내 그물에 걸린 것이오, 선명한 빛깔의 치마 같은 하루살이와 수레바퀴에 맞서는 사마귀의 무리는 허물을 스스로 만들어 그 업을 피할 수 없기에 내 그물에 걸린 것이오. 이러하듯 저들이 그물에 걸린 것은 저들의 잘못이지 어찌 나의 잘못이란 말이오? 사정이 이렇거늘, 선생은 내게 화를 내고 나를 훼방하면서 도리어 저들을 보호한다는 말이오? 아무쪼록 선생은 생각을 잘하여 삼갈 것을 삼가고, 스스로 이름을 팔지 말며, 스스로 재주를 함부로 자랑하지 말며, 이익을 추구하다가 재앙을 부르지 말며, 재물과 명예 때문에 죽지 마시오. 스스로 똑똑한 체 오만하게 굴지 말고, 남을 원망하거나 시기하지도 마시오. 땅을 잘 가려서 디딜 만한 곳인지를 알아본 뒤에 발을 내딛고, 때에 맞추어 갈 때 가고, 올 때 오도록 하시오. 세상에는 나보다 훨씬 더 큰 거미가 많이 있으니, 그 그물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그 말을 들은 이옥 선생은 지팡이를 던져 버리고 세 번이나 자빠질 정도로 허겁지겁 내달려 문간에 이르러 문에 자물쇠를 채우고는 바닥을 굽어보면서 비로소 한숨을 쉬었다. 거미는 다시 나와서 종전처럼 그물을 치기 시작했다.

시대를 앞서간 이옥 선생이 거미의 입을 빌려 세상에 건넨 인생에 대한 잠언(箴言)의 내용은 미끼 속에 바늘을 보지 못하고 먹이 사이의 덫을 보지 못하는 인생의 어리석음과 거미줄에 걸린 벌레들을 통하여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아침 나라를 이끌고 있는 벼슬아치들에게 권하고 싶은 글이기도 하다.

고영표 장로 (의정부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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