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저일 생각하니] 네가 장로냐! 어느 구걸 목사의 호통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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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나는 40대 초에 장로가 되었다. 신앙의 아버지 같은 장경재 목사님을 잘 받들어 모셨다. 그런 장 목사님을 구걸 목사가 괴롭혔다. 노방 목사로 말하면서 자택을 찾아가 헌금을 요구했다. 인정과 사랑 많은 장 목사님은 진짜 헌신하는 노방 목사로 생각하고 몇 번 올 때마다 넉넉한 헌금을 드린 모양이다. 어질고 착한 장 목사님도 생계형 목사로 구걸오는 것이라 생각하고 나를 불러 어떤 사람인가 알아보라 했다.

나는 구제금을 조금 준비해 두고 조용히 타일러 보내려 했다. 그가 내 보이는 목사 신분증을 본 나는 가짜로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당신이 진짜 목사요?” 큰 소리로 물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네가 장로냐!” 호통치더니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은 깨지 말아야지라는 말을 남기며 떠났다. 준비한 구제금도 전하지 못하고 장 목사 잦은 방문으로 구걸하지 말라는 주의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당돌한 구걸 목사는 떠났다. 나는 목사 빙자의 거지로 느꼈다. 이 교회 저 교회 떠도는 떠돌이 가짜 목사라는 생각은 있었으나 그냥 보내기는 불쌍하여 교회에서 준비한 구제금을 주려 했다. 조금은 아쉽게 떠난 후로 우리 교회는 오지 않았다.

더 고운 사랑의 말로 자칭 노방전도 목사라는 그 사람을 새롭게 각성시켜 보내지 못해 좀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가 젊은 장로가 교만해 보여 “네가 장로냐!” 한마디 호통치고 간 것으로 생각되었다. 목사라 변장하면 구걸에 더 유리하다고 생각했는지 알 수 없다. 나 자신도 그 구걸 목사가 보기엔 교만해 보인 것도 사실이다. 나의 질문이 구걸 목사 신분을 의심하는 말을 했던 것이다. 거짓의 아비는 마귀라 했는데 거짓 목사가 거짓말 해 가며 교회마다 구걸할 수 있는 것이다. 

교회가 물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것은 교회가 해야 할 주님의 일이다. 거짓부리로 교회 목사를 괴롭히는 구걸은 없어야 하겠다. “네가 장로냐” 비록 구걸 목사가 가짜라 하더라도 진짜 장로들이 마치 장군같이 굴지 않고 겸손하게 교회 잘 섬기고 심방 잘하고 기도 열심히 하며 교회 평신도 대표로 존경받는 모범 장로인가를 깊이 반성해 보는 경종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디모데전서 3장 감독의 자격이 과연 있는가도 깊이 살펴봐야 할 것이다. 

우리 교계가 존경하는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장로, 가나안농군학교를 세워 바른 믿음의 길을 걸어간 김용기 장로, 일제시대부터 교육자로 나라사랑하고 북한의 민주화에 앞장 섰던 조만식 장로 같은 모범 장로님들 뒤를 이어갈 오늘의 우리 장로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우리 교회 구제위원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시골교회 교회청소부인데 간암을 앓고 있는 남편을 서울에서 병원치료를 하고 싶다고 우리교회 청소부로 써 달라는 절절히 간절한 호소의 편지를 보내왔다. 정말 그 여 집사의 호소를 들어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 교회도 추가로 청소부를 둘 처지가 아니었다. 장 목사님과 상의하여 남편의 약값이라도 보태드리자고 금일봉을 편지 주소대로 보내드렸다. 곧 감사편지가 내게 왔다. 서울 20개 대형교회에 구직 편지를 간절히 호소하며 보냈으나 아무 곳에도 반응이 없는데 그나마 구제금이라도 보내준 교회는 화성교회 하나밖에 없다고 감사의 뜻을 전해왔다. 세계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 많이 보내는 선교국가는 한국이다. 한국 안에도 “네가 장로냐?” 구걸 목사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 장로들에게 묻고 있다. 한국 25만 장로가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주님 말씀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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