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지성] 매일 기쁘고 의미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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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순간의 생애를 살아간다. 오고 또 오는 수많은 인간들이 짧은 생애를 살다가 세상을 떠나가지만, 어떤 인간은 매일 기쁘고 의미 있게 살아가다가 후회 없이 떠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기쁨도 아무 의미도 없이 헤매다가 후회의 눈물로 떠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의 생애가 때로는 험난한 세파처럼 모진 풍파와 우여곡절이 많을지라도 그 속에서 어떻게 하면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가 있을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있겠지만, 필자의 견해를 피력해 본다.  

그것은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려운 역경을 당할 때마다 내 뜻과 내 고집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정도(正道)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기차가 철로를 벗어나면 탈선의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술수적 행동은 결국 기쁨보다는 비극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예수의 형제 야고보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에 이른다(약 1:15)”라고 말씀하였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비극은 과욕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을 우리는 냉정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자책정신(自責精神)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가는 독소 중의 중요한 독소의 하나는 인간 관계의 분쟁문제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분쟁문제의 대부분 발생 원인에는 모든 책임이 상대방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로남불의 교만한 태도는 끝없이 분쟁을 반복하게 만든다. 하지만 요나 선지자는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것을 내가 아노라(욘 1:12)”고 했다. 이런 자책정신은 자신이 죽는 길이 아니라 사는 길이요, 축복의 길이다.  

오늘날 100세까지 생존하는 장수시대를 맞이했지만, 무위도식(無爲徒食)하면서 장수하는 것은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필자는 2019년 한국의 이흥래 장로가 모스크바에 세운 모스크바 장신대학에 강의하러 갔다가 정 뽀리나 장로의 안내로 톨스토이가 살던 고택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에 톨스토이가 생존시 육성이 담긴 라디오를 틀어주었다. 그 안내 장로에게 그 음성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장로가 대답하기를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요지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평범하지만 톨스토이의 감동적인 말로 느껴졌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은 죽어도 자신은 죽지 않을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정말 일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는 어두운 밤이 도적같이 어느 날 갑자기 올 것이다. 인간은 각자 달란트가 다르다. 자신이 달란트의 사명을 깨달아 최선을 다하는 것은 자신의 생애를 기쁨과 의미 있는 생애로 이끄는 지혜가 될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이 없어도 사회적 지위가 낮아도 주님이 걸어가셨던 십자가의 길을 따라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죽은 후의 영생(永生)의 세계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순간순간 현재 삶의 실존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도 사후의 세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모님들이 돌아가신 후에 재산이 많을수록 그 재산 때문에 불화하고 심지어 소송까지 벌이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에는 형제간에 우애나 가족의 기쁨보다는 불화가 칮아오기 마련이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족(oikos)의 확대가 국가라고 했다. 가족에 불화가 찾아와 분쟁이 생기면 의욕이 감퇴되고 살맛을 잃게 된다. 그런 현상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매일 매일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할 때, 기쁘고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조인형 장로 

– 영세교회 원로

– 강원대 명예교수

– 4.18 민주의거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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