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생명의 길을 따라온 걸음 정봉덕 장로 (22) 하나님이 부르신 곳에서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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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시작할 희망의 불씨‘대출’지원사업 본격시작

나는 10년간 봉사하고 세대교체를 위해 자진 사임하였다. 나눔의 선교를 실천하는 첫 단체로서, 한아봉사회의 시작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척 감사한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한국교회가 한아봉사회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보답하고, 세계교회가 한국을 도운 것처럼 우리도 도움이 필요한 여러 나라에 받은 것을 돌려주려는 노력을 드러낸 것이 기쁘다.

나는 하나님이 이 나눔의 선교를 매우 기뻐하신다고 믿는다. 더불어 한국교회는 이러한 일을 더욱 크게 감당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도 믿는다. 

우리에게는 산업화, 민주화, 교회 부흥과 성장이라는 경험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이다. 이 달란트를 묻어 두지 않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부어주신 은혜에 보답하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될 것이다.

한아봉사회 실무에서 은퇴를 앞두고 생애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나이를 생각하면 무엇을 개척하는 것이 과욕이 아닌가 싶고, 또 하나님과 전국교회가 그것을 긍정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여러 차례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난 사역의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 필요의 요소들이 더욱 강하게 다가왔다.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는 생명의 길을 여는 사람들

오랫동안 총회 여러 부서를 거치며 느끼게 된 것은 총회 산하에 지도자(교회와 사회지도자) 양성장학기금과 가난한 이들을 돕는 봉사 기금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교단에는 어려운 가정을 도와줄 봉사 기금이 전무했다. 국내외적으로 해마다 발생하는 재해구호를 위하여 전국 교회가 헌금하여 후원하고 있지만, 도움을 받아야 할 긴박한 사정에 처한 가정을 도울 수 있는 제도는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사회경제의 급격한 변화로 빈부 격차가 심화되어 오히려 가난한 사람이 증가하게 된 시대에, 그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것이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이며, 누군가는 반드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개교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니 별도기관의 설립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생각을 김용복 박사와 나누었고, 김 박사는 네덜란드 아머스푸르트(Amersfoort)에 본부를 둔 오이코크레딧(Oikocredit) 한국지회의 창립을 권유했다.

2000년 10월 19일, 오이코크레딧(Oikocredit) 한국지회를 창립하기 위해 종로5가 연동교회에 모여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이코크레딧의 운영 규정이 국내법에 적용될 수 없음을 알게 되었고, 결국 오이코크레딧의 한국지회 설립은 중단되었다. 그 후 여러 차례 논의를 거친 결과, 고전적인 사회선교사역을 수행하자는 의견이 모아져 2002년 9월 23일 김창인 목사(평생교회), 이규호 목사(경주 구정교회) 4인의 증경 총회장이 발기인이 되어 김창인 목사를 회장으로 한 ‘생명의 길을 여는 사람들’을 창립하게 되었다.

자활과 자립의욕은 있지만 제도적인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어 자활과 자립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자는 것이 가장 큰 의의였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2003년 5월 15일 한국기독교 경제문화운동본부(온양아산 지역 초교파 모임)가 IMF로 어려움에 처한 농촌교회 교역자를 지원하기 위해 청원한 3천만 원을 3년간 대출하는 것으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로 신대원과 대학등록금, 미자립교회 전도사 사택보증금, 건물화재복구비, 간이식당 창업비 중국심양 신흥교회 후원, 캄보디아 봉사관건축비 등을 대출하면서 발전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모든 대출 상담과 사전 심사, 서류 준비는 나 혼자 처리했다. 쉴 새 없이 상담을 하였지만 5인으로 구성된 전문 심사위원단에 올리는 서류는 월 1건 정도였다. 그만큼 까다롭게 심사를 했다. 정부가 도와주는 생활보호대상자나 구제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작은 도움이 있으면 자립할 수 있으나 다른 곳에서는 대출의 기회가 차단되거나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서 갚을 방법이 확실한 사람, 가장 중요하게는 이 기금의 취지를 이해하는 사람에게만 대출을 해 주는 원칙에 따른 일이었다. 기금의 취지는 단 하나 ‘생명을 살리는 것’이었다. 그 돈을 통해서 삶의 희망을 되찾고, 가정을 일으키고, 자녀들을 잘 키워낼 사람에게 대출해 주려는 것이기에 매사 치밀하게 따지고 여러 가지 사안들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대출 대상이 기독교인으로 제한된 것은 아니지만 교회를 통해 알고 찾아온 기독교인들이 많았다. 교회밖에 모르고 살아 세상 물정에 어두운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실수로 낸 교통사고 합의금으로 전세금을 빼 주고 가족과 거리로 나앉을 상황에 처한 50대 남자 집사도 있었고, 가게가 갑자기 망하자 남편이 술에 빠지고 아들이 대학을 그만둔 상황에서 다른 가게를 시작할 엄두를 못 내고 있던 40대 여 집사도 있었다. 모두 제1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기는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한 번만 도와주면 일어설 수 있는 사람들인데 그냥 두면 좌절하게 될 사람들이었다.

정봉덕 장로

<염천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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