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친구 목사의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맹장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6개월 만이다. 암이 급속도로 퍼져서 항암치료를 받는데 너무나 힘들어했다. 몸은 점점 말라가고 집 밖으로는 다닐 수가 없었다. 사모들끼리는 목사들보다 더 친한 사이였다. 나는 아내가 그 사모와 통화하며 우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나는 친구 목사가 안쓰러워 쉽게 전화도 못 했다. 그저 기도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목사의 아내가 병원 의사에게 물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나아집니까?”“나아지지는 않습니다.”그렇다면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항암치료를 받던 사람들이 항암치료를 중단하면 갑자기 더 나빠질 수도 있다고 했지만 그래도 ‘나는 마지막을 기도하며 준비하겠다’고 했다. 아내로부터 그 얘기를 들은 날,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친구 목사에게 전화했다. 처음 몇 마디는 차분하게 시작했다. 그런데 마음이 울컥해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냥 소리를 내 엉엉 울었다. 그때 나는 ‘이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 말만 하며 울었다. 친구는 ‘민 목사, 고마워’ 이 말만 반복하며 울었다. 나는 더 이상 말 못 하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는 1분도 안 돼 끝났다. 그다음 날 친구의 아내는 하나님 앞으로 갔다. 이제 장례를 치른 지 한 달밖에는 안 된다. 친구 목사는 나와 둘이 울며 통화한 것을 평생 잊을 수 없겠다고 한다. 나는 이번에 가장 큰 위로는 함께 울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사람에게는 오감이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다. 거기에 하나가 더 있다. 육감이다. 그런데 또 하나가 더 있다고 한다. 칠감인데 그것은 바로 공감이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1장 16절~17절에서 이 세대를 비유하여 말씀하시기를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다”라고 하셨다. 로마서 12장 15절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한다. 공감하라는 말씀이다.
요즈음 아픈 사람이 많다. 상처받은 사람도 많다. 힘든 사람도 많다. 슬픈 사람도 많다. 아파하는 교회도 많다. 아파하는 교인들도 많다. 눈물을 흘리는 목회자도 많다. 어느 권사님은 예전에는 기도만 하면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 우리들은 그렇게 많이 흘리던 눈물이 메말라가고 있다. 이제는 ‘이러지 않으려고 했는데’라고 말하지 않기로 했다. 울고 싶으면 울기로 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자.
민경운 목사
<성덕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