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발언대] 대림절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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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에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2000여 년 전에 오신 예수님을 또 기다린다는 말인가? 그렇다. 기원전(BC)에 살던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나라를 잃고 로마의 속국이 되어 메시아를 기다린 것 이상으로 지금 우리가 메시아를 기다린다.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지상으로 쫓겨난 인간이 회개는커녕 오히려 타락하여 지상에 바벨탑을 높이 쌓고 있다. 범죄자가 호통을 치며 하늘을 향해 외치는 집단소음은 창조자의 인간을 향한 안타까운 세미한 음성은 분별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저출산 문제로 인한 의료혜택으로 초고령화 시대가 되고,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 변화로 지구가 죽어 가고 있다고 환경단체가 외쳐도 각 나라는 약육강식의 집단 인간 본성을 버릴 수가 없다. 원자무기 확산 금지 협약을 맺었지만, 핵보유국은 날로 늘어날 전망이다. 로마제국의 학정보다 구세주를 더 기다릴 때가 되었다. 

팔레스타인과 우크라이나가 중동의 화약고라면 한국과 대만은 극동의 화약고다. 10대 강국이라는 타이틀보다도 우리는 주변의 잡음 속에서 우리를 향한 진리이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분별하고 행동해야 한다.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인류를 대속하시고 우리를 창조주 하나님과 화해하고 살게 하려고 예수 그리스도는 오셨다. 그래서 우리는 기원전으로 돌아가 성탄을 기다리는 것이다. 

대림절에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평신도들은 또 괴롭다. 교회에서는 대림절에 매주 다섯 개의 촛불을 하나씩 켜며 설교하고 매일 새벽기도로 회개를 촉구하며 교회 뜰에는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워 교회가 여기 있다고 과시한다. 신도들은 교회의 대림절 의식에 매시간 동참하지 못해서 괴롭다. 어떤 교회는 트리 대신 10kg의 쌀자루로 실내에 ‘쌀 트리’를 세우고 또 어떤 해는 ‘기저귀 트리’를 세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끝나면 주변의 어려운 이웃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힘든 산모나 ‘어린이집’을 찾아 기저귀를 가져다주는 운동을 한다는데 그런 데라도 참여하면 좀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앤소니 드 멜로의 책 『종교박람회』에는 ‘구루의 고양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인도의 성직자들이 저녁 기도를 올리는 시간이면 늘 떠돌이 고양이가 나타나 예배자들을 방해했다. 그루(인도에서 종교지도자들을 일컫는 말)는 이 고양이를 묶어놓으라고 시켰고, 고양이는 매일 기도 시간마다 묶여 있었다. 구루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저녁 기도 시간이면 고양이는 어김없이 묶여 있었고, 그 고양이가 죽자 다른 고양이가 대신 아슐람(힌두교 사원)에 붙들려 들어와 묶였다. 몇 세기 뒤 구루의 제자들이 유식한 논문들을 썼다. 주제는 <본격적으로 수행되는 모든 예배에 있어서의 고양이의 필수적인 구실에 관하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교회가 의식에 얽매이면 이와같이 어처구니없는 일을 할 수도 있다. 대림절도 전통적인 의식을 중요시하는 것보다 오신 주님의 참뜻을 평신도들과 공유했으면 한다. 

오승재 장로

<오정교회 

한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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