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탄절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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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다시 뜻깊고 복된 성탄절을 맞는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묵상에 잠긴다. 마리아는 갈릴리 조그마한 마을에 살고 있었으며 나사렛에 사는 요셉이라는 목수의 아내가 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요셉은 매우 친절한 사람이었고 진심으로 마리아를 사랑했다. 마리아와 요셉은 다윗의 자손으로 유다 지파에 속했다. 어느 날 사가랴에 나타났던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도 나타났다.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입은 자”라고 말하면서 ‘예수’(Jesus, 구원, 임마누엘, 여호와의 이름)라고 부를 아들을 낳으리라고 알려 주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로, 영원히 왕 노릇 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놀라는 마리아에게 성령이 임하심으로써 잉태하게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수태고지’(受胎告知. The Annunciation)이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마리아는 주의 뜻에 완전히 복종했다. 우리는 얼마나 복종하고 있는가?

메시아의 탄생은 가난하고 학대받는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선포되었다. 목자(牧者)들은 이를 퍼뜨리려고 애썼다. 오늘의 성탄절도 소외받는 이들에게 교회가 복음을 알려주며 사랑을 베푸는 성탄절이 되기를 바란다. 각자 심령의 빈자리, 마음의 중심, 준비된 자리에 구주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원한다.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예수’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흔한 이름이었다. 이는 ‘자기 형제들과 동등(同等) 됨’을 취하고자 하신 것이다. 오늘의 그리스도인은 마음을 비우고 낮은 자리로 더 내려가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12월 25일에 탄생했다는 것은 4세기 로마 콘스탄티누스(Contantinus) 황제 때 이루어졌다. 우리나라는 1949년부터 공휴일로 지정이 되었다. 성탄절에 유럽 기독교인들은 전통적으로 가난한 이웃들에게 선물을 준다. 우리 한국 교회는 교회 자체의 축일(祝日)로만 지켜오지 않았는지 되돌아봤으면 한다.

우주의 창조주, 만유(萬有)의 주, 만왕(萬王)의 왕, 우리를 그의 형상(形象)대로 지으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임하셨다. 우주 역사에서 이보다 더 큰 사건이 있을까! 이보다 더 큰 은혜, 더 장엄(莊嚴, Glorious)하고 복된 일이 있을까! 온 세계는 이념과 인종을 초월하여 성탄절을 축하하며 기뻐하고 찬양한다. 환희(歡喜)의 마음으로 손뼉을 친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주 예수 나신 밤 그의 얼굴 광채가 세상에 빛이 되었네.” 불구하고 오늘의 일부(대형) 교회는 세속화, 귀족화가 슬며시 들어와 있진 않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성탄절 새벽에는 성도들이 교회에 모여 철야를 하면서 함께 즐거워하다가 새벽에 교인들 집, 문밖에 서서 성탄 찬송가를 불렀다. 언제부터인가 사라지고 교회 학교 어린이들의 축하 발표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소규모 도시 교회, 농어촌 교회는 이도 사라져 쓸쓸한 분위기이다. 규모가 있는 교회는 성인들의 음악 전문성이 담겨진 칸타타(Cantata)를 발표한다. 

세상은 광란(狂亂)의 밤이 된다. 죄악이 관영(貫盈)한 세태이다. 쾌락을 찾으며 즐기고 있다. 각종 죄악이 범람(氾濫)한다. 교회는 세속화, 나태(懶怠), 교만해져 가고 있지 않는지 성찰(省察)해 봐야 한다. 교회는 앞장서서 의(義)와 거룩과 양심, 믿음과 진리와 지성, 긍휼과 자비를 회복해야 한다. 형식적인 축하에서 탈피하고 영적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진정으로 구주 탄생을 감사하고 기쁨으로 찬양해야 한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던 동방 박사들처럼 진정한 예물을 드려야 한다. 소외된 자들을 돌아보며 복음을 세상에 능력있게 전하라는 것이 성탄을 맞는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지상(至上) 명령이시다.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베들레헴에 오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와 은총이 한반도와 온 세계, 전쟁 지역,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풍성히 임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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