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신실한 믿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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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올해 2024년은 기대하는 아주 멋진 갑진년이 됐으면 한다. 이 땅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군병들이다. 힘찬 발걸음 한 발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찬송을 부르며 나아가는 용기 있는 새해를 기원한다. 두려울 것도 무서울 것도 없다. 대장되시는 예수님이 우리들의 힘이기 때문이다.

같잖게 군다는 말이 있다. 통칭하면 이것을 사이비라고 한다. 세상에 가장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 이것이라 하겠다. 인간사는 그래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 이것이 아닌가 싶다. 매사 옳은 길로 가는 길목마다 매복하고 있다가 덮치는 이 복병은 많은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하며 좌절하게 한다.

그러나 세상은 무서운 동네다. 사탄마귀가 호시탐탐 기독교인들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결단코 경계를 늦춰서는 아니된다. 우리는 흔히 탄식하길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니 사시이비(似是而非)라는 말을 곧잘 쓴다. 

봄은 왔는데 봄 같지 않고 옳은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세상은 온통 이런 일로 발목을 잡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런 험악한 함정에 자칫 발목을 잡힐까 염려를 하는 것이다. 이런 일에 속지 말고 바른 길 곧 의의(意義) 길을 걸어야 한다. 의의 길, 그것은 신실한 믿음의 길이다. 주께서 이 땅에 오셔서 분부하신 말씀을 상기하고 그 길을 찾아 걷는 것이다. 

신앙이란 원래 무형의 진리이다. 철학이 견지하는 인간의 지적 패턴이 아니고 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를 이해하는 그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하지만 다원교가 팽배한 세상에서 바른 길을 찾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신앙을 의지하는 것이 의의의 길이라는 것을 알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고 한편으로는 아직도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무엇을 얼마나 아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귀를 대야 한다. 복잡한 세상에서 한 번쯤 자신을 되돌아보는 자성과 도대체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기독교인들의 자세를 정립해 볼 필요를 느꼈으면 한다.

당(唐)나라 때 시인 소식(蘇軾)의 시에 춘도인간초목지(春到人間草木知)라는 시구가 있다. 초목도 봄이 온 것을 알고 즐거워 한다는 뜻이다. 이제 미구(未久)에 봄이 올 것이다. 초목들조차 봄을 맞아 즐거워한다 했다. 그렇다면 믿는 사람들은 무엇을 기다리며 또 무엇을 즐거워할 것인가. 그것은 주님의 재림이다. 기독교인들은 이것이 봄소식이다. 하루하루 세상을 이기며 주님이 속히 오시길 매일 기도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주님은 모든 주의 백성들이 구원받길 원하신다. 그래서 오실 날을 늦추고 계신다고 했다. 우리 모두는 결코 이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먼저 믿은 우리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해야 한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그 사랑을 우리의 이웃에게 전해야 한다.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를 해야 한다. 모든 크리스천들은 주께서 기뻐하시는 이해의 멋진 전도의 왕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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