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선천 복음화와 민족 교육의 주역 양전백 목사 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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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의 태두로 존경받던 성자다운 어른으로 기억

일제의 비인간적 고문•악형, 체면•품위 앗아가

기독교 지도자들에 대한 회유가 효과가 없자 일제는 그 대신 압박정책을 실행하는데,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이 ‘데라우치(寺內) 총독 모살 미수사건’으로 이른바 ‘105인 사건’이다.

한일합방(1910) 직후 1911년에 일어난 ‘105인 사건’도 그 발상지는 신성중학교였다. 일본은 황해도 신천의 안명근이 초대 조선 총독 데라우치(寺內正穀)를 암살하려던 사건을 윤치호, 이동녕, 이승훈 등이 조직한 비밀 단체인 신민회가 배후에서 조종했다고 몰아, 이를 빌미로 항일 민족 세력을 제거하고자 신민회 인사들과 평안도의 북장로교 선교사를 체포했다. 이때 신성중학교 교사들과 학생들이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됐다. 

‘105인 사건’의 요지는 이러했다. 일제가 관서지방을 순시한다는 소문을 듣고 1910년 9월부터 12월까지 기독교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을 동원해 경의선 연변에 있는 평양, 선천, 정주, 신의주 등지 정거장에서 권총으로 총독을 암살하려고 모의했으나 사실이 와전되고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결국 미수에 그쳤다는 것이었다.

일제는 1910년 9월 3일 오전에 신성중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을 검거했고, 양전백도 체포됐다. 서울로 압송된 피의자들은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 무자비한 고문을 더는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심문 도중 사망하거나(김근형, 정희순), 허위로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 양전백은 1심에서 6년 형을 선고 받았고, 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복역하다 1913년 3월에 석방됐다.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모두 389명이었는데, 이 중 양전백을 포함한 123명이 경무 총감부에 의해 정식 기소됐다. 기소 과정에서 양전백은 일제 관헌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을 당했다. 당시 그와 같은 감방에 있었던 선우훈은 훗날 그 모습을 이렇게 전했다. “양전백 목사는 그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교계의 태두로 존경받던 성자다운 어른이셨다. 그런데 밤 9시경 수갑 찬 손에 콩밥 한 덩이를 들고 다리를 절며 의복을 거두지 못한 채 부들부들 떨며 방안에 들어서서는 미친 사람같이 손바닥의 콩밥을 핥아 잡수셨다. 머리털이 전부 뽑혔고, 한 가닥의 수염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내 옆에 앉았는데 반죽음 상태인 그는 문안도 없고 대답도 없었다.”

일제의 비인간적 고문과 악형은 교회와 민족 지도자로서 갖추고 있던 그의 체면과 품위를 송두리째 앗아갔다. 그뿐 아니라 극심한 고문으로 인해 그는 일제의 조작 음모 각본대로 허위 자백을 했다. 이것이 그로서는 두고두고 가장 큰 아픔으로 남았다.

결국 양전백 목사는 다른 122명과 함께 1912년 5월 기소되어 6월 28일부터 경성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공판 중 기소자들은 사건이 고문으로 날조됐다며 공판 투쟁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강행해 9월 28일 123명 중 105명에게 징역 5-10년의 유죄 판결을 내렸다. 선천지역 신민회 주요 간부로 양전백 목사는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유죄 판결을 받은 105명은 모두 복심 법원에 항소했다. 항소심은 경성복심법원에서 1912년 11월 26일부터 1913년 3월 20일까지 총 52회에 걸쳐 진행됐다. 1심 공판 과정에서 사건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자, 항소심부터 피고인들이 신청한 증인과 증거 제출이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항소심 판결에서 윤치호, 양기탁, 임치정, 이승훈, 안태국, 옥관빈 등 6인을 제외한 99인이 무죄 석방됐다. 

한편, 1909년 조지 매큔 선교사가 선천에 부임했다. 1905년 9월 12일 미국 북장로회 교육선교사로 한국에 온 그는 1909년부터 신성중학교 교장으로 인재 양성을 통해 근대교육의 기틀을 잡았다. 한국에 온 후 그는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 입학 기회를 주었고, 평소 재목이 될 만한 학생은 일단 중국의 기독교계 학교로 보내 영어를 공부하게 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는 등 지도자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문교부 장관과 연세대 초대 총장을 지낸 백낙준도 신성중학교 출신으로 매큔의 주선으로 중국을 거쳐 미국 유학을 했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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