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운전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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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는 아무리 생각을 고쳐 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달리는 차에서 앞을 보랴, 깜박이도 켜랴, 속도를 줄이느냐며 난 평생토록 연습해도 운전은 못할 것 같다던 아내가 두꺼비 파리 잡듯이 운전시험에 턱하니 합격을 했으니 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자동차에 대해서는 맹탕인 아내가 운전시험에 합격한 것이니 우선 동생네다, 매부네다, 처가다 하면서 경사를 알려 주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할 마음은 전혀 없이 그저 가슴이 허전할 뿐이다.

덕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가정 사정이 여의치 않아 군에 자진 입대를 했었고 군에서는 소질에 따라 원하던 대로 운전병이 되었었다. 제대 하고는 바로 운전이 직업이 되고 만 것이다.

아내인 혜숙이 역시 여고까지 다녔지만 천재적인 음악적 소질이 있어 이제는 웬만한 음대 졸업생 이상으로 피아노에 능해 이 때문에 피아노 레슨이 생계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고 보니 덕수에게는 피아노가 완전히 백지였고 혜숙에게는 운전이 먹통이었다. 

그런데 그러던 혜숙이가 운전시험에 합격을 했다고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왔으니 위신상 뭐라고 말은 하지 못했지만 내심으로는 까무러치기 일보 직전이었던 게 사실이었다.

‘이거 앞으로 야단났군.’ 마치 날개를 잃은 새처럼 기가 막혔다. 그것도 그럴 것이 차에 대해선 덕수를 빼놓고는 아무도 집안에서 말을 할 사람이 없을 만큼 그야말로 불가침의 성역이나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고 약이 올랐다.

덕수는 아파트 주차장에다 차를 세우고 내렸다. 어쩐지 집으로 들어가는 게 서먹했다. 참으로 묘한 기분이었다. 보나마나 애들이 엄마가 운전시험에 합격을 했다고 소리를 치며 좋다고 야단법석을 할 것이고 아내는 함지만큼이나 입이 벌어져서 주행시험 상황을 설명할 것이다. 그 앞에서 어떤 표정을 해야 할지 덕수는 막연했다. 덕수는 곰곰이 생각을 하면서 계단을 오르다 갑자기 발을 멈추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케이크라도 하나 사서 들고 들어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었나 케이크에다가 기왕이면 꽃까지 한송이 얹어서 축하를 하면 얼마나 기뻐할 것인데.’

어떻든 이렇게라도 해야 우선 어색한 표정을 감출 수가 있을 것이고 또한 그래야만 졸장부를 면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솔직히 말해 심정은 착잡했다.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짐작했던 대로 아들 딸들이 길길이 뛰면서 엄마가 운전시험에 합격을 했노라고 입마다 떠들어댔다. 아우성을 치는 애들 뒤에서 아내는 장군이나 되는 것처럼 버티고 서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딱 한 번에 합격을 했다니.’ 둘째 아들놈의 말이 몹시도 마음에 거슬렸다.

“물론 단번에 합격되는 게 좋겠지. 그렇지만 운전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손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손에 익히기 위해서는 서너 번 시험을 치르는 게 나쁜 게 아니야.”  “그래! 아버지 말씀이 맞아 운전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손으로 하는 거니까.”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내가 말을 이었던 것이다. 덕수는 몹시도 기뻤다. 즉석에서 아내가 긍정적인 말을 할 줄은 미처 생각지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법이다.  “당신 큰일했소 축하하오!“ 덕수는 활짝 웃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더니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모두의 얼굴이 유난히도 밝고 환했다.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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