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코니아] 거룩과 디아코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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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어린 시절에 성경책을 가져오라는 부모님의 심부름에 놀러 나갈 마음이 급해서 성경책을 책상에 툭 던져 놓았습니다. 이 일로 부모님께 꾸중을 들었습니다. 거룩한 책을 함부로 여겼다는 이유였습니다. 문득 그날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역시 ‘혼날 만했다’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과연 성경이 그 책 자체만으로 거룩한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옷걸이에 걸린 ‘성의’를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과연 성의를 입는다고 내가 거룩해지는가?’ 

우리는 거룩을 말할 때 외형적 특별함을 주목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거룩을 뜻하는 히브리어 카도쉬()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분리됨’을 의미합니다. 이는 대상의 특별함이 아닌, 목적의 특별함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속성을 그대로 세상 가운데 나타낼 사람을 선택하여 구별하신 것입니다. 거룩이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가 갖게 되는 존재적 의무입니다. 레위기는 우리에게 ‘거룩’에 대해 잘 알려줍니다. 또한 ‘거룩’이 섬김, 곧 디아코니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9장을 살펴보면 거룩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3절은 부모를 ‘경외’하는 것이 거룩이라 말합니다. ‘경외’를 뜻하는 히브리어 동사 야레()는 하나님을 대상으로 할 때만 사용되는데 여기에서는 부모와의 관계에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만큼이나 ‘부모에게 잘하라’ 말씀합니다. 거룩이 가정에서부터 시작됨을 의미합니다. 또한 9절 이후 ‘이웃사랑’이 곧 ‘거룩’임을 말씀하시며 가진 이가 가지지 못한 이들을 위해 베푸는 것(10절)과 네 이웃을 억압하거나 착취하지 않는 것, 품꾼의 삯을 제때 지불하는 것을 거룩이라 말씀합니다.(13절) 이어서 장애인을 보호하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거룩임을 말씀합니다. 이처럼 거룩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한정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특별하고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함을 말씀합니다.

신약에서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그것이라”(약 1:27) 말하며 경건이 레위기에서 말하는 거룩과 동일하며 하나님과 이웃들 앞에서 살아야 할 구별된 삶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들고 있어서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펼쳐 읽고, 말씀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거룩입니다. 성의를 입어서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성의에 부끄럽지 않는 삶이 거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인 디아코니아를 실천하는 삶, 하나님과 이웃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거룩이며, 성도의 마땅한 삶입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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