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나이 많은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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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서 순환도로로 들어가려면 이쪽에서 갈 때 말이야 육교 밑을 지나서 오른쪽 첫 번째 길로 올라가야 해. 잘못하면 그냥 지나가 버릴 수가 있으니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구 알겠어?” 순모는 마치 중학생에게라도 일러 주듯이 운호에게 설명을 했다.

“도로표지판이 있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시지 마세요.” “그 쪽에는 도로표지판이 잘 안돼 있다구.”

순모는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를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명희가 답답하다는 말투로 불쑥 끼어들었다.

“아니 대학교수가 어련히 길을 찾아가지 못할까봐서 그래요? 이젠 애 아빠가 아니에요?” “어허 참! 그렇지가 않다니까 그러네. 여봐 돌다리도 두들겨 가랬다고 확실하게 알고 가라는데 무어가 어쨌다는 게야!” “그쪽에 왜 도로표시가 없나요? 바로 육교에 큼직하게 붙어 있는데요.” “…….”

아참! 그랬었구나 순간 당혹의 빛이 순모의 얼굴을 스쳐 지났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가 쉽다니까 그러네.”

명희는 입을 다물었다. 말로는 남편을 이겨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말이다. 공항에 들어가서는 말이야. 바로 우측으로 가는 길이 있어 그리로 가면 돼.” “네 알고 있습니다.” 명희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연구다, 학술회다 하며 일 년에도 족히 서너 번은 외국을 드나드는 아들 교수에게 외국이라고는 잘해야 일 년에 한번 정도 나갈까 말까 하는 순모가 공항 안의 길까지 설명을 하니 딱하기 짝이 없는 마음이다. 이런 경우가 바로 공자님 앞에서 문자를 쓴다는 것이리라 생각을 했다. 

운호는 해마다 외국을 다녀오고 부모님들도 서너 번은 넘게 다녀왔지만 아내는 애들의 과외수업 때문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마침 학회에서 연구문이 당선됐다며 두둑이 나온 상금으로 이번만은 무리가 되더라도 아내와 애들까지 데리고 내일 외국으로 떠나려는 것이다.

순모는 아내와 며느리가 함께 웃어대는 부엌으로 갔다. 볶은 고추장을 조그마한 플라스틱통에 담아서 그것을 다시금 비닐봉지에 담고 있었다.

“뭐요 그건?” “외국 나가서 음식이 느끼해 입에 맞지 않을 때는 고추장이 최고 아니에요? 식사 때마다 먹기 좋으라고 나누어 넣는 거예요.”

순모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했다. “아니 어련히 알아서들 먹을라구. 그것을 일일이 나누어서 넣어 준단 말이야?” “이게 얼마나 편리한데요. 먹고 나면 비닐봉지채 버리면 되거든요.” “거 쓸데없는 시간 낭비지. 아니 손은 두었다 무얼 하라구 그런 것까지 다 챙긴단 말이요.”

옆에서 웃음을 참으며 듣고 있던 며느리가 그래도 시어머니라고 명희편을 거들고 나섰다.

“어머님께서 저희들이 식사 때마다 번거롭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나눠 싸시는 거예요.” “번거롭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 그래 너 말 잘했다. 바로 나도 그런 마음으로 아범에게 공항 가는 길을 일러 준거야. 그런데 나더러는 어련히 길을 못찾아 갈까봐서 그러느냐구 하구.”

명희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래요! 당신 말이 옳아요! 이젠 됐어요?”  자존심이라는 게 뭔지 그저 자기가 맞다고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영감이다. 이게 바로 나이 많은 어린애가 아니고 뭐랴.

명희도 며느리 따라 웃었다.  “아니 그렇게 해서 이기면 뭐가 좀 나아요?”  “어허 이 사람이 무슨 말을…”

순모도 웃었다. 웃음에는 애 어른도 없는지 뒤엉킨 웃음소리가 부엌에서 크게 울려 나오고 있었다.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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