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작명(作名)에 얽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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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신앙산책’에서는 사람의 이름과 관련한 이야기를 말씀드리고자 한다. 이 내용이 ‘픽션(fiction)’이 아니고 ‘사실(fact)’이라는 점을 말하기 위해 모든 등장인물의 실명(實名)을 기록하는 점, 당사자나 독자들의 양해가 있으시기 바란다. 

명가곡 『그네』의 작곡자는 ‘금수현’ 선생이시다. 그분의 큰 아드님이 우리나라의 유명한 지휘자 ‘금난새’ 선생이다. 내가 처음 교편을 잡았던 서울 용산구에 있던 숭실중학교에 ‘금수현’씨의 작은 아들 ‘금노상’군이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학기말이 되어 학적부를 정리하던 나의 대학 동창 한강부(韓康夫, 1940~ ) 선생이 나에게 ‘금군’의 생활기록부에 그 학생의 한자이름을 보여주었는데 ‘금군’의 한자 이름을 보고 나는 매우 의아하였다.

성(姓)이 ‘금’씨라면 당연히 ‘거문고 금(琴)’이리라 생각했었는데 뜻밖에도 생활기록부의 한자 성명 난에는 ‘거문고 금’이 아니고 ‘쇠 금(金)’자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金’은 ‘쇠’를 가리킬 때는 ‘금’이지만 ‘성(姓)’을 말할 때는 당연히 ‘김’으로 읽는 것이 우리문화의 보편적인 사회적 통념이다. 그날 친구가 전해준 내용은 ‘금수현’씨가 자기의 이름 ‘金水賢’을 ‘김수현’으로 표기하지 않고 ‘금수현’으로 고집하였으므로 그 자녀의 이름이 모두 ‘금난새’와 ‘금노상’이 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70년대 중반, 도서출판 『샘터사』의 대표의 성함이 ‘오증자(吳澄子, 1933~ )’씨였다. ‘오증자’씨의 가운데 글자 ‘澄’자의 음가(音價)가 ‘증’이냐 아니면 ‘징’이냐를 놓고 내가 근무하던 고등학교의 교무실에서는 논쟁(?)이 벌어졌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배운 어휘 중에 ‘밝고 맑음’을 뜻하는 단어 ‘명징(明澄)’을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澄’은 누가 뭐래도 『맑을 징』임을 확신했던 터여서 내가 ‘샘터사’로 전화를 걸어 당사자인 ‘오증자’씨와 직접 통화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결론은 좀 뜻밖이었다. 오씨(吳氏)의 아버님이 이름을 짓기 위하여 옥편을 찾으시던 중 분명히 ‘증’자 줄에서 ‘澄’을 찾아서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옥편에서 글자를 찾는 과정에서 생긴 ‘실수’였다는 뜻이었다. 모든 옥편에는 종이를 절약하기 위해서 ‘증’이 끝나면 같은 줄에 다음 글자를 이어서 인쇄하게 되는데 아마도 이런 연유(緣由)로 생겨난 착오가 아니었나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그날 나는 ‘오증자’씨에게 “그렇다면 왜 나중에라도 글자의 음(音)을 ‘증’에서 ‘징’으로 바르게 고치거나 아니면 ‘증’자 중에서 맘에 드는 글자로 바꾸지 않았는가?”를 물었더니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고 또 ‘고유명사’이므로 그냥 계속해서 그렇게 쓰고 있다는 대답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름을 짓기 위해 작명가를 찾을 필요는 없지만 이름은 모름지기 ‘부르기 좋고, 느낌이 자연스러우며 정확한 한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부모가 조금 소홀히 해서 평생 동안 이름 때문에 몹시 속상해 하는 사람을 나는 여럿 알고 있다.

성씨가 ‘오(吳)’씨이고 이름은 ‘준만(俊萬)’인 고향의 중학교 후배가 있다. 이름의 글자가 ‘준걸 준(俊)’ ‘일만 만(萬)’이니 그 뜻이 얼마나 남성적이며 멋스러운가? 그런데 그의 성씨가 ‘오’씨이므로 성과 이름을 붙여 읽으면 ‘오준만’인데 이때 ‘자음동화(-접변)’현상이 일어나 ‘오줌만’으로 발음이 되니 어린 시절 친구들은 그를 보기만 하면 “오줌만 질질…”하고 놀려대던 기억이 난다. 비슷한 사례로 우리나라의 유도선수로서 2014년 아시안게임 유도 금메달리스트로 후에 유도 대표선수코치를 역임했던 ‘방귀만(方貴萬, 1983~ )’씨가 있다. 그가 어린 시절, 학교에서 짓궂은 친구들의 심한 놀림을 받았을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의 일이다. 

요즈음 주변에 순 한글 이름을 많이 볼 수 있지만 가능하면 이때에도 한글 이름의 같은 음을 찾아서 한자로도 함께 표기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한다. 한 번은 ‘순 한글’이름을 가진 사람에게서 자기는 ‘한자 성명란’을 채우지 못하고 매번 텅 비워 두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된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문화는 한자를 함께 사용해 온 것이 전통적인 관행이어서 『마이클』이나 『에스더』처럼 서양이름이라면 모르거니와 우리말 이름이라면 한자를 완전히 배제(排除)하는 문제는 한번 재고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어쨌거나, 부모가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소홀히 해서 자녀가 평생 동안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할 일이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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