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통해서 로마 제국을 도덕적, 영적으로 정복했다. 그들의 고결한 삶은 이방 세계에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우리의 삶을 통해서 세상에 큰 영향과 감화(感化)를 줄 수 있다. 오늘 교회는 무엇 때문에 세상에서 존경을 받지 못하고 신뢰마저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일까? 종교 개혁 시대와 청교도 신앙 운동의 시대에 교회는 세상을 밝히는 빛일 수 있었다. 어둠을 환하게 비추는 등불이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말한다. 사도 바울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었기에 이렇게 아름답고 심오한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 사도가 가르쳐 주는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한 자라는 것이다. “너희가 다 나와 함께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을 입은 사람이다. 은혜란 무엇인가? 아무 공로나 자격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받은 은총이다.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아~!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큰 은총이 아닌가!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은 것이 요구된다. 은혜의 양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게을리하거나 멸시할 때 징벌도 더 크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기본 법칙이다.
하나님께서 나같은 자를 구원받은 자로 택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셔서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주신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친다.” 놀랍고 경이로운 말씀이다. 가슴이 벅차 오르고 감격스러운 은혜이다.
나는 세상에서는 보잘 것 없는 자일지라도 하나님께서 특별한 지위를 주셨다. ‘하나님 나라의 권속,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이를 인식하고 살아야 옳다.
둘째는 그리스도인을 성도(Saint)라고 불러 주신다. 가톨릭에서는 시성식(諡聖式)을 통해 성인(聖人)의 지위를 부여한다. 사도는 우리를 ‘성도'(聖徒)라고 부른다.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이며 공동체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쓰시기 위해 따로 구별한 사람들이다. 세상과는 다른 범주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져 주신다.” 그리스도인은 구별된 사람이다. 그러므로 구별되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 대해 마땅한 일이다.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한다.’ 회개한 의인답게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야 한다.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지고 형벌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알고 믿는 사람이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다시 살아나셨음을 확실히 믿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와 나 사이에는 신비한 연합이 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다.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지체(肢體)가 된다. 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유기체(有機體)이다. 우리는 포도나무의 가지다. 원나무의 생명력이 우리에게로 흘러 들어 온다.
우리는 성도이다. 구별된 사람이다.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와 함께 다시 살아난 사람이다.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안에 계신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다. 얼마나 신비하고 놀라운 약속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은혜에 참여한 자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을 올려 드리며 사는 자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