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의 행위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가?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창 9:22).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창 9:25).
이 본문은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가) 어떻게 함이 행한 실수를 두고 노아는 그토록 무서운 저주를 했을까? (나) 하나님이 왜 나쁜 짓을 한 함을 저주하지 않고 죄 없는 함의 아들 가나안에 무서운 저주를 내렸을까?
가)에 대한 질문은 참으로 어려운 난제다. 성경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의 내용 외에는 없어 함이 무슨 일을 했는지 숱한 억측과 해설들이 있다. 이 사건을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창세기 9장 24절의 “작은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란 무슨 뜻일까? 함이 아버지의 벌거벗은 모습을 눈으로만 보고 나갔다면 술에 취해 있는 노아가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함은 벌거벗은 것을 보고 다른 형제에게 알려주었을 뿐인데 노아가 술이 깨어 불같이 화를 내며 저주했다면 노아의 인격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창피해서 저렇게 화를 낸다면 노아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자기가 술에 취해 벌거벗어서 일어난 일인데 누가 누구에게 화를 내는가? 만약 악한 의도로 흉을 보았고, 불손한 행동을 했다고 할지라도 따끔하게 훈육해야지 노아의 저주는 지나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현대를 사는 젊은 자녀 세대는 이것을 정말 이해할 수 있겠는가? 아들이 아버지를 흉보았다고 해서 아버지가 자식에게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라는 엄청난 저주를 퍼부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반대로 그 당시 시각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생각해 보자. 노아는 포도나무를 심는 땅의 사람 농부였다. 포도주는 발효된 포도즙으로 근동 지방에는 일상생활의 음료로 마셨고 노아의 실수는 포도주 마신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도하게 마셨고 술 취함의 정도는 벌거벗음에서 잘 드러난다. 홍수 심판의 고난 시간이 지나자, 방심과 부주의로 절제함을 상실했다.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인 노아가 품위 손상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실수(죄)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성경에 “하체를 보고”의 히브리 말로 “에르와 라아”로 그 뜻은 단순히 힐끗 보았다는 뜻이 아니고 쾌감을 느끼고 만족스럽게 악의적으로 즐겼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다른 형제에게 알렸다는 것은 아버지를 놀리려는 상당한 의도가 있었고 공경 대신 허물을 가리지 않는 악의와 미움이 그 마음에 도사리고 있었다. 셈과 야벳은 정반대로 아비의 수치를 감추기 위해 뒷걸음쳐 노아의 몸을 보지 않고 얼굴을 돌리는 세심함과 옷 덮는 과정을 보면 극명한 대조로 저주를 받을 만하고, 축복받을 만한 노아의 선언이 지나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아비를 저주한 자는 어둠의 저주가 임함이 당연하고(잠 20:20) 그들의 민족 앞에서 끊어짐을 볼 수 있다. 아비가 큰 실수를 했더라도 함은 존경심을 가지고 수치를 가려주어야 했다. 부모에 대한 존경심은 인간이 지녀야 할 기본 도덕이며 계명이며 하나님의 뜻이다. 그 시대는 족장이나 아버지의 위치는 다르다. 노아는 모든 인류의 제2 조상이었다.
오상철 장로
<시온성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