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회개하고 자복했다
다섯 살이었던 아들이 어른스럽게 대답했다. “엄마 아빠, 저는 괜찮아요. 엄마 아빠는 괜찮으세요?”
가족들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몸을 일으키려는데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무릎을 만져보니 뼈가 산산조각이 나서 우둘투둘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사고가 나던 순간 무릎으로 차 앞에 있는 서랍을 들이받았던 것이다. 결국 나는 들것에 실려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속 80킬로미터로 달리던 두 대의 차가 정면충돌했는데 아무도 죽지 않고 모두가 살았다는 게 기적이었다.
운전을 했던 친구는 특별히 다친 곳 없이 인대만 늘어나서 목발을 짚고 나를 찾아왔다. 친구를 보자마자 나는 병원 침대에 누워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신다.”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이렇게 매를 치시는구나.” “내가 맞을 때가 되어서 이렇게 된 거야.” 내 입술로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비가 참 많이 내렸다. 정말 고통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 안으로 완전히 들어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평안했다. 세상에 마음을 줄 때는 두렵고 불안했는데 하나님 앞에 온전히 자복하니 마음이 평안했다.
다음 날 아내와 아들이 왔다. 나는 큰 부상을 입었지만, 감사하게도 아내는 다리 한쪽에 상처를 입고, 아들은 머리가 조금 찢어진 정도였다. 아들도 바로 치료를 해서 외상이 크지 않았고 정밀 검사를 했을 때도 뇌에 이상은 없었다. 나중에 아들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머리가 아파서 몇 년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것도 다 치유해 주셨다.
나는 부산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후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와 대수술을 받았다. 세 조각 난 무릎 뼈 중에 두 조각은 빼내고 끊어진 힘줄을 연결시키는 수술이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나는 5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6개월의 병원 생활 중 3개월은 다리에 깁스를 했고 나머지 3개월은 물리치료와 재활 치료를 받았다. 처음 깁스를 풀었을 때는 다리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오죽하면 재활 치료사가 “이런 다리는 처음 본다”며 한숨을 쉴 정도였다. 다치기 전에 주위에서 “물리치료, 재활 치료 참 어렵다더라”, “다 큰 장정들도 힘들어서 엉엉 운다더라”라는 말을 들은 적은 있지만, 직접 겪어보니 정말 눈물이 날 만큼 고통스러웠다.
재활 치료를 받으면서 나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회개했다. 방황했던 시간들, 하나님을 외면하고 세상에 마음 주었던 삶들,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어버리려 했던 마음. 그 모든 것을 회개하고 자복했다. 그리고 병원에서 걸어 나갈 수 있게만 해주신다면 신학 공부를 하겠다고 간절히 기도드렸다.
이은태 목사
뉴질랜드 선교센터 이사장
Auckland International Church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