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대한민국 사회가 ‘호국과 보훈’을 깊이 돌아보며 순국선열과 호국선열의 희생을 기억하며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생명을 바친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호국과 보훈을 말할 때 기독신자들 가운데는 종종 두 극단이 존재한다. 하나는 ‘세속 국가와의 거리 두기’라는 명목 아래 국가적 기념일이나 안보의 문제를 신앙과 무관한 것으로 치부하는 입장이며, 다른 하나는 ‘국가주의’에 경도되어 복음보다 민족을 앞세우는 태도다. 개혁주의 신앙은 이 양극단을 모두 경계하면서도 신앙의 본질에서 ‘호국과 보훈’의 바른 위치를 회복하게 한다.
개혁주의 신학은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이 미친다고 믿는다. 이것은 교회나 영혼의 문제뿐 아니라 정치, 법, 문화, 국가까지도 하나님의 섭리와 통치 아래에 있다는 뜻이다. 국가는 인간의 죄성과 무질서를 억제하고 공공선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반 은총의 도구다(롬 13:1-7).
즉, 국가는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 속한 제도이며 그 안에서 신자는 선한 시민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국가의 안전과 질서를 지키기 위한 ‘호국’의 정신은 단순한 민족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응답이며, 신자의 사회적 책임으로 이해될 수 있다. 나라를 위한 헌신과 희생은 구원의 조건일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정의, 이웃을 위한 자기 부정적 삶의 표현이 될 수 있다.
성경은 끊임없이 ‘기억하라’고 말씀한다. 출애굽 이후의 이스라엘은 구원의 날들을 기념했고(출 12:14),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넌 후 열두 돌을 세워 후손에게 여호와의 행사를 전하게 했다(수 4:6-7). 하나님의 백성은 역사를 기억하며, 거기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배우는 존재다.
오늘날 우리가 순국선열과 국가유공자들의 희생을 기리는 일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보훈은 단순한 제도나 정치행위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 베풀어 오신 섭리와 은혜를 기억하는 ‘신앙적 감사’의 행위가 될 수 있다. 역사를 신앙으로 해석하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땅을 보호하셨는지를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개혁주의 역사관의 핵심이다.
개혁주의 신앙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모든 삶의 방향을 정립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만나는 자리이며 대속(代贖)의 중심이다. 이 십자가 정신은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섬김을 포함한다.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친 이들의 희생을 십자가의 대속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웃을 위한 자기희생의 정신은 분명 복음의 열매로 이해될 수 있다. 요한복음 15장 13절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증언한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사랑은 이웃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드리는 삶이다. 호국과 보훈의 정신이 복음의 중심에 뿌리내릴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혁주의는 현실을 도피하지 않는다. 죄로 인해 타락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하며, 복음은 공적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진정한 평화는 무책임한 중립이나 방관이 아니라 악에 대항하고 질서를 수호하며 정의를 실현하는 가운데 온다.
‘호국’은 결코 전쟁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호국은 무질서와 악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고, 자유와 정의의 삶의 터전을 보존하려는 도덕적 책임이다. 평화를 위한 희생은 인간의 생명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사랑의 표현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를 세상 속에 증언하는 공동체다. 그러므로 교회는 호국보훈의 정신을 신앙적으로 해석하며,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국가를 지키기 위한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실질적인 위로와 섬김의 사역에 앞장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다음세대에 바른 역사 인식과 기독교적 시민의식을 교육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교회는 국가와 민족을 절대화해서는 안된다. 개혁주의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중심에 두며 어느 민족이나 정권도 복음보다 위에 있지 않으며 선행하지 않는다. 교회는 복음을 왜곡하지 않으면서 바른 시민성과 공적 책임을 감당하는 성도들을 길러야 한다.
호국과 보훈은 신앙과 무관한 외부 사안이 아니다. 개혁주의 신앙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모든 영역을 해석하며, 국가의 질서와 공동체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헌신 역시 복음적 사랑의 열매로 본다. 교회는 이 기억의 신앙을 붙들고 역사 속 하나님의 섭리를 해석하며 더 정의롭고 평화로운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시 67:2)
황인찬 목사
<의왕중앙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