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를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사랑’을 떠올릴 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문학이나 문화 컨텐츠에 사랑은 빠지지 않는 단골 주제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사랑을 표현하는 여러 단어들을 사용해 남녀의 사랑, 형제의 우애, 헌신적인 사랑에 대해 설명한다. 인간사의 주된 관심사인 ‘사랑’은 기독교 신앙의 엑기스이다. 탁월한 기독교 상담학자인 래리 크랩은 연인 사이에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꾹꾹 눌러 쓴 편지처럼 성경을 우리에게 보낸 하나님의 연애편지(God’s Love Letters to You)라고 말했다. 매우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변적이거나 추상적이지 않다. 감각적이거나 쾌락적인 부분만을 자극하지 않는다.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끼리 모여 누리는 배타적인 성향도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상황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 구약에 사용된 ‘헤세드’는 보잘 것 없는 인간을 한결같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려준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류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려고 독생자를 보낸 사건에서 절정에 이른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어 악으로 치닫고 있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 가장 고귀한 것을 희생하셨다. 그리고 그 희생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을 세상으로 보내어 상하고 황폐한 이들을 치유하고 새롭게 하라고 부탁하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신 사랑의 계명은 암울한 세상을 밝히고 생명을 주는 유일한 방안임을 강조하고 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예수님이 제시하신 사랑의 방법은 내 모습 그대로 용납하고 인내하고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세상이 아름답고 고귀한 사랑의 가치를 알게 될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려면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의 뿌리는 무엇보다 한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죄악된 인간의 본성은 자신보다 못하다고 판단되는 대상을 무시하는 특성이 있다. 차별이라 불리는 사회 현상은 타인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반면에 예수님은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는 이들을 찾아가 친구가 되어주셨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며 타인을 존중하는 사랑의 본을 친히 보여주셨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빈민들을 섬겼던 마더 테레사 수녀는 누구보다 한 사람을 존중했다. 그녀의 말을 수록한 글을 인용한다.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위대한 사랑은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거대한 사역을 행하는 것에 있지 않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선 목자의 결단에서 작은 자를 존중하는 사랑을 발견한다. 한 영혼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향기로운 사랑을 꽃피운다.
사랑의 또 다른 뿌리는 신뢰이다. 신뢰관계가 확고한 사람들은 무슨 말을 듣거나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요즘처럼 거짓 뉴스가 난무하는 시대에 신뢰가 미미한 사랑은 위태롭다. 의심과 불신은 관계를 무너뜨리고 삶의 활력을 앗아간다. 누가 뭐래도 나를 신뢰하는 사람이 있다면 용기를 얻고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교회는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세워진 공동체이다. 신용사회를 표명하지만 정작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세상에 굳건한 신뢰에 기반을 둔 사랑을 전파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되길 소망한다.
이광호 목사
<대전노회, 더드림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