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가훈은 ‘꿈을 갖고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자’이다. 이 열네 글자의 내용 안에 나의 인생과 뜻과 삶의 지표, 생애의 정신이 함묵되어 있다. 아마 이 가훈은 첫애 승봉이가 태어날 때부터 집 거실 한복판에 걸어두고 오며가며 혹은 기회 있을 때마다 마음 다짐하고 늘 가슴에 새기며 지금도 눈여겨보고 있다.
나는 이 가훈을 한참 생의 의미를 알아갈 때 그리고 후일을 위한 목표도 없이 방황하며 어떤 마음 안의 확연한 미래관이 없을 때 처음 생각했다. 예수를 믿으며 하나님의 말씀 중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살아갈 정신을 재능과 재주를 주었으니 개개인이 갈 길을 정하라’는 말씀을 새겨듣고 어느 날 이 가훈을 확정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현재를 열심히 살며 장래의 이상과 희망을 바라며 소원하며 꿈을 갖고 나름대로 살아간다. 하지만 때로는 그 꿈을 이루기까지 전력을 기울이며 사는 인생은 참으로 가혹한 시련과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목적한 삶이 의미대로 잘 진전되기도 하겠지만 때로는 갖가지 시련과 시행착오, 혹은 얘기치 못한 수난이나 고통도 함께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자기 자신을 원망하거나 자포자기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하나님이 주시는 매일 매일의 일상에 순응하며 현재의 시간에 감사하며 살면 또다른 의지와 더욱 큰 힘이 용솟음치는 새로운 도약의 길이 열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즉, 언제 어느 때이든 결코 남을 탓하거나 원망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부족함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밖에 안되지 않는가. 그리고 모든 일의 시작과 과정 결과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그에 상응하는 결실과 수확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라고 나는 가훈을 정할 때부터 지금까지 초지일관으로 믿고 있다.
자신의 삶을 유지하며 어느 환경이나 조건, 분위기 속에서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우랴.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이 가훈을 볼 때마다 말없는 자신감으로 충만되며 마음 한 구석에 하나님의 계시같은 전율로 새로운 출발점에 선 듯한 희열을 느낀다.
충청북도 보은군 회남면에서 18세 때의 일이다. 한참 한문 공부에 열중일 때 보통고시를 보게 되었다. 당시는 어릴 때부터 신동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 없었다.
일제 강점기 증조 할아버지께서는 조선 사람으로는 손가락을 꼽을 정도의 희소하던 도청에 근무하시고, 할아버지께서는 선대부터 유림의 집안이라 동리에서도 우리 집안을 우러러 보던 시기였으므로 모든 것이 자신에 차 있었고, 거칠게 없는 우월함으로 당시에 관리가 되는 첫 관문인 보통고시에 응시했으나 의외로 낙방하고만 것이다.
생각하면 이것이 인생의 나의 첫 시련이었다. 낙방한 한심한 마음과 우울을 달랠 겸 근처의 회남교회에 본격적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시골마을이라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전부 모여야 40여 명 됨직한 아담한 가족 같은 교회였다. 성경을 공부하고 신앙심이 깊은 분들과 어울리면서 차츰 성경말씀에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래들과 어울리면서 서로 교리를 해석하는 날들은 자신도 모르게 어떤 신비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듯 마음 안까지 훈훈해져 갔다. 당시에는 여름방학 때쯤이면 청주에서 미국인 요한 선교사가 설교를 해주러 가끔 오셨는데 6개월 전에 학습을 준 후 다시 6개월 후에야 세례를 베풀었다.
우리 한국의 전도사와는 달리 자신감이 넘치는 유창한 우리말을 써가면서 깊이 있는 성경 해설을 해주실 때면 새로운 세계를 보는 듯 마음 안이 한없이 맑고 편안해졌다.
그 중에서도 빌립보서 4장 13절의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다”란 말씀에 크게 감동해 나 자신을 다시 추스르는 계기가 되었다. 여태까지의 살아오고 희망했던 일들을 뒤돌아보며 반성하며 마음 안의 새로운 경지의 깨달음을 얻는 듯했다.
그래서 점점 기독교에 심취해 가고 나의 미래관과 삶의 가치관도 새로운 면모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세상과 일상을 관조하고 면밀한 생각 하나를 더 얻게 된 것이다. 청주에서 오는 요한 선교사는 봄가을로 세례를 주고 1박 2일을 머물고는 떠나곤 했다.
드디어 나는 마음 안에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하고 어머니께 간곡히 여쭈었더니 별말씀 없이 흔쾌히 허락하셨다. 18살도 저무는 양지가 더욱 그리운 수확의 계절 가을 어느 날 나는 드디어 요한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것은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요 미래의 크나큰 교훈의 서막처럼 내 마음은 그 어떤 계시를 받은 듯 한없는 감사와 즐거움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온 마음 안의 잡음이 없어지고 말할 수 없는 자신감과 희열로 충만해졌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 감격 자체가 현재의 나를 있게한 거룩한 근본적 사유였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아버지께서는 내게 당신의 풍모를 주셨으며 어머니께서는 내게 자상한 인격의 근원인 사람됨의 인성을 주셨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명문가인 밀양 박의 후손인 어머니께서는 내게는 크고 넓은 성격과 사내다운 어진 면모와 꿈과 이상을 갖게 하는 멀리 보는 혜안을 주셨다. 지금도 ‘꿈을 갖고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자’란 가훈을 보며 운명적으로 하나님이 내린 계시 같은 마음으로 온몸이 빛과 열로 가득함을 느낀다.
폭넓은 깊이로 오는 한없는 감사로 오늘도 두 손을 모은다. 부모님께서도 나의 하나님의 섬김과 기독교의 신앙의 교리를 이해하시고는 후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셨다. 이 또한 얼마나 큰 광명인가.
양한석 장로
• 문현중앙교회
• 시인
• 정치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