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회, 나의 일생] 야드바셈: 꿈엔들 잊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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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엽, 모진 고난을 겪은 두 민족이 있다. 한국인과 유대인이다. 동쪽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한국인이, 서쪽에서는 독일 나치에 의해 유대인이 모진 고난을 겪었다.

1941년, 일본 제국주의는 세계 패권의 야심을 드러내며 그들이 ‘대동아전쟁’이라 부른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다. 이 무렵, 일제의 핍박과 전쟁으로 인해 죽은 우리 백성은 500만 명을 훌쩍 넘고,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까지 더하면 800만 명에 이른다. 그것도 모자라 1945년 8월 17일에는 우리 민족 지도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을 모조리 죽일 계획까지 세웠다. 그러나 그 음흉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이틀 전인 8월 15일 우리는 해방을 맞는다. 만약 이틀만 더 늦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는 신묘막측하다.

같은 시기, 지구 저 건너편 독일에서는 600만 유대인의 비극적인 대학살이 벌어진다. 이 비극을 기억하기 위해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대학살 기념관을 세운다. 건축가 모세 샤디프가 설계한 이 기념관은 ‘야드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이라 불린다. 예루살렘 외에도 미국 백악관 건너편 기념관을 비롯해 미국 전역에 7개, 유럽의 파리, 베를린 등에도 같은 이름의 기념관이 세워졌다. ‘야드바셈’이란 히브리어로 “기억하라”는 뜻이다. 기념관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마라!”

‘야드바셈!’, 일본의 잔악함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든 영화 한 편이 있다. 몇 년 전 상영된 「동주」이다. 올해는 해방 80주년이자, 윤동주 서거 8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서시」로 만났던 시인 윤동주의 삶과 고뇌, 애국심을 그린 작품이다. 윤동주 곁에는 독립혁명가이자 시인이며 사촌인 송몽규가 늘 함께 있었고, 영화 속에서도 함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영화는 개명까지 하며 일본 유학길에 올랐던 당대 엘리트들의 고뇌와 비극을 통해 서민 백성들의 비참한 삶을 비추고자 했다.

윤동주는 제국주의의 노예 백성으로 살아가며 자신이 시인이 되고 싶어 하는 안일한 꿈조차 부끄러워하며 몸부림친다. 그때 송몽규는 윤동주에게 말한다.

“니는 계속 시를 쓰라. 총은 내가 잡는다.”

즉, 너는 이 비극적인 역사를 글로 남겨라. 처단은 내가 하겠다는 것이다.

「동주」 영화를 보고 나오며 한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아무리 평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라도, 그 비극의 암흑기를 살았던 이들이 있었기에 이 평화가 가능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평화를 꿈꾸며 싸웠고, 마침내 죽어갔다. 그 시대, 그 영웅들, 그 역사를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날을 잊을 건가?”

몇 년 전 내가 일본을 여행하던 중 마침 후쿠오카를 지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2월 16일, 윤동주가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날이었다. 여행 일정을 중단하고 감옥을 찾아가 보고 싶었다. 어렵사리 옛 감옥터를 찾아갔지만 이미 감옥은 사라지고 다른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 담장에는 누군가 남긴 글귀가 있었다.

“한국에서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한 젊은이가 이 감옥에 왔다 가노라.”

그리고 그 글귀 옆에는 윤동주의 죽음을 기억하며 꽂아두었을 한 송이 꽃이 담장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함께한 이와 손을 잡고 조용히 기도드렸다.

류영모 목사

<한소망교회•제 106회 총회장•제 5회 한교총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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