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기간 중 그녀가 내게 준 기억에 남는 선물은 두 권의 성경책이었다. 한 권은 우리말 성경이었고, 다른 한 권은 영어 NIV 성경이었다. 성경은 내가 어릴 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성당에 다니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안드레 신부님, 안젤리카 수녀님, 수녀님이 보여 주셨던 예수님의 화상, 영세와 견진, 고해성사, 미끄럼틀, 톱밥 난로…다시 돌아가고 싶은 아련한 추억이었다. 우리 가족은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5년간 냉담하고 있었다.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녀를 통해 나를 다시 부르셨다.
성경책을 선물 받고 그녀를 따라 몇 번 교회에 나갔다. 그때 우리가족 중에는 아무도 교회 다니는 사람이 없었고, 누이들은 오히려 절을 찾아다니고 있던 때였다. 결혼 후 3~4년이 지난 어느 날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 무척이나 재미가 있어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게 느껴졌다. 기사를 마감하고 나면 또다시 저녁 취재를 해야 하는데도 회사에 앉아서 성경책을 버젓이 펴놓고 읽기를 여러 날 동안 계속했다.
그러자 어느 날 부장이 “김성복 씨, 당신 목사 될 거야? 아니, 성경책만 읽고 있으면 어떡해!” 하고 꾸중을 했다. 그의 말은 예언이 되었다. 그즈음 내 마음속에도 살며시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것은 목사가 되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혼자 은밀히 기도하기를 “하나님, 저같은 죄인도 목사 시켜 주시면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메모를 남길 때도 ‘예비 목사 김성복’이라고 쓰곤 했다.
그러나 갑자기 회사를 사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가족의 생활을 책임져야 했고, 둘째로는 정치부 기자라는 자리에서 발을 빼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나는 소위 잘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문사에 입사하자마자 첫 출입처로 총리실을 맡았고 이후 외무부, 국회 출입 기자를 거쳐 청와대 출입 기자가 되었을 때는 불과 서른두 살의 나이였다. 젊은 나이에 권부를 출입하는데 기자직을 버리고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 “일 년만 더요, 일 년만 더요” 하고 있었다.
김은진 목사
•홀여성선교회 회장
•마곡성은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