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뜻을 위해 신중했던 자리
안디옥의 교회 공동체는 이방인을 향한 선교에 열심을 부렸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명실상부 이방인들이 중심이 되는 교회였으며 이방인을 위한 복음의 전초기지였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의 이방인을 향한 헌신은 유대인들과 곳곳에서 부딪쳤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들은 이 문제 때문에 골치가 아팠습니다. 그들은 이미 베드로가 가이사랴의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 집안과 주변 이방인들이 모두 교회의 일원이 되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행 11:17-18)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 안팎에서는 여전히 예수의 제자들이 이방인과 교류한다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예루살렘의 극렬한 유대교도들은 이방인과 동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제자들과 사도들을 공격하려 들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몇몇 사람들은 이 문제를 공공연히 문제 삼곤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교회와 더불어 이방인 선교 사안의 앞뒤를 정리해야 했습니다.
바울은 안디옥에 와 있던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 안디옥 교회의 이방인 사역에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갈 2:4, 행 11:27) 그는 예루살렘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온 그들이 무엇을 염려하는지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문제들 때문에 자신과 안디옥 교회의 이방인을 향한 사역이 중단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갈 2:5)
바울은 예루살렘에 갈 길을 기회로 당대 교회의 기둥들과 만나기로 했습니다.(행 11:27-30, 갈 2:9) 바울은 이 길에 할례받지 않은 동역자 디도를 동행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방인에게도 차별 없이 복음을 전하는 일이 예수님의 귀한 뜻임을 진지하게 변호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셨다는 사실 앞에서 그것이 헛된 것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바울은 그가 사명으로 받은 이방인 선교, 그 귀한 하나님의 일이 무너지거나 무의미한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러나 최선을 다해 노력했습니다. 우리의 일은 주님의 일입니다.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이 성령의 능력 가운데 있는 교회를 통해 신중하게 허락되어야 한다는 것을 바울의 길에서 배웁니다.
강신덕 목사
<토비아선교회, 샬롬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