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도의 문학산책] 아나스포라(Anaspora)의 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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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70년의 굴곡진 삶 ②

#분단(分斷), 자유 대한으로의 탈출 (2)

<~새벽 동이 틀 무렵/~갈대 무성한 뭍으로 들어 섰을 때

“이제 남한 땅이오, 무사히 왔수다”/출발 이후 안내원이 처음 말을 떼었다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남쪽으로, 큰 마을에 들어섰다

신작로엔 처음 보는/멋진 자동차가 지나간다/미국 군인이 탄 

지프차라고 했다/천막으로 덮개를 하고/뒷자리엔 세파트가 앉아/나를 노려 보고 있었다>

(사선을 넘어-2의 부분)    

<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아 물이 막혀 못 오시나요/다 같은 고향 땅을 가고 오건만/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리길/~/보따리 등에 메고 넘든 고갯길/산새도 너와 함께 울고 넘었지/자유여 너를 위해 자유여 너를 위해/이 목숨을 바친다>

<남인수 작사 작곡 ‘가거라 삼팔선’>

<1947년 봄/심야/황해도 해주(海州)의 바다/이남(以南)과 이북의 경계선(境界線) 용당포(浦)//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嬰兒)를 삼킨 곳./스무 몇 해가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

*시의 원문은 한자어로 쓴 것인데 필자가 한글 토를 달아 놓은 것임.  

<金宗三 시인의 ‘민간인(民間人)’ 전문>

남인수의 ‘가거라 삼팔선’은 1947년부터 불리워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분단의 비극을 묘사하고 있다.

김종삼 시인의 월남기인 ‘민간인’은 용당포에서 배를 타고 38선을 넘어왔다고 적고 있다. 우리 가족은 그의 월남보다 몇 달 앞서 해주의 갯벌을 걸어서 내려왔다. 칠흑의 야음을 타 썰물에 안내인을 따라 건너왔다. 나는 깊은 수렁이 나타나면 아버지의 등에 업혀 건너기도 했다. 새벽녘에 우리 일행은 갈대가 무성한 둔덕으로 올라섰다. 외딴 초가집 한 채가 있었고 그 집으로 안내해 주었다. 이때 안내원의 “여기는 남한 땅이다. 무사히 잘 왔다”고 인사를 하고 그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날 아침 큰 신작로 길에 미군 지프차가 지나가는 것을 처음 보았다. 지프차의 뒷좌석에 커다란 셰퍼드가 보였다. 나로선 실로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그 광경은 지금까지 내 기억에 각인되어 있다.

박이도 장로

<현대교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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