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기와 희망을 준 친구들
나는 황태준 목사가 부목사로 시무하던 충무교회에서 가까운 친구 목사들과 함께 시각장애인선교 사역을 시작했다. 그 후 황 목사는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한 번은 그가 목회하고 있는 미국 최남단 플로리다 주의 큰 도시 잭슨 빌을 방문했을 때 그는 나를 그 유명한 스와니 강가로 데려갔다. 그때가 1984년 7월 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곳에서 도착하기 전까지는 ‘얼마나 아름다운 곳일까’ 하고 상상했지만 그 상상은 삽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스와니 강변은 모기와 벌레 떼들로 가득 찼고 가장자리는 탁한 물빛으로 더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100여 년 전에는 아주 깨끗한 환경이었을 것이다. 포스터가 스와니 강변을 노래한 그 시절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1989년, 독일을 방문해 로렐라이 언덕을 올랐을 때도 똑같은 느낌을 감추지 못한 적이 있었다.
황태준 목사는 내가 시각장애인선교에 대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할 때 용기와 희망을 준 친구이다. 시각장애인선교 사역을 전문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 친구는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시에서 참길장로교회를 담임했던 강형길 목사이다. 그는 나를 여러 번 초청해 실명자들을 위한 재활교육 훈련을 받도록 주선해 주었고, 내가 멕코믹 신대원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내가 잊을 수 없는 동역자는 워커힐 아랫동네인 광장동에 있는 광장교회에서 시무했던 故 이정일 목사다.
그는 지난 20여 년 동안 시각장애인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영락교회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를 돕고 있다. 그는 영락교회에서 목회할 때 실로암 어머니회를 만들어 시각장애인선교에 협력하게 했고, 그가 목회한 광장교회에 부임한 후 지금까지 시각장애인선교회와 관계를 가지며 협력하고 있다.
10여 년 전 나와 같은 중도 실명한 김재홍이라는 신학생이 부인의 손에 이끌려 광장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그는 고려대 상대를 졸업하고 한국은행에 입사해 출세의 꿈을 키워 나가고 있었으나, 불행히도 눈에 포도막염이 생겨 중도 실명자가 되었다고 했다.
다행히 부인은 이대를 졸업하고 여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기에 생활의 위협은 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시각장애인선교회에서 장학금을 대주어 신학교를 졸업하게 했다.
그는 졸업 후 중도 실명자 선교회인 ‘산소망선교회’를 만들어 서울 지역에 거주하는 중도 실명자들을 대상으로 선교와 봉사를 하게 되었다.
2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산소망선교회는 중도 실명자를 위한 유일한 선교기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광장교회에서는 시각장애인선교회와 협력해 산소망선교회 활동을 적극 후원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150여 명의 중도 실명자들이 교회에 모여 찬양예배와 성경공부를 하고 있고, 자활을 위해 점자 공부, 수지침, 안마, 지압 훈련을 받고 있다. 참으로 이분들의 뜨거운 기도와 재활의 의지는 교회 성장에도 큰 몫을 하고 있다.
특히 감사한 일은 광장교회 여전도회 회원들이 10여 년을 하루같이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마다 중도 실명자들을 위해 교회가 제공하는 식사 준비에 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족한 재정은 봉사하는 여전도회 회원들이 협력해 도와주고 있다. 그리고 봉사자들은 시각장애인 형제들을 돕는 가운데 은혜를 받고 큰 믿음을 얻게 되었다.
오늘날 교회들은 교인들의 신앙 성숙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갖고 있지만, 어려운 이웃을 돕는 자원봉사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 광장교회는 봉사관을 마련해 더 많은 시각장애인을 돕고자 한다고 했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