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참으로 중요한 물음이다. 기독교 2천 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이단이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속에서 생겨났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 그리고 노아로부터 민족과 나라들이 생겨났다. 그 중에서도 이스라엘 민족만은 하나님께서 택정(擇定)하시고 구원 역사를 이루기 위해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약속의 씨로 이삭을 주셨다. 이삭에게서는 에서와 야곱이 태어났다. 야곱에게서 이스라엘 민족, 12지파를 구성하는 열두 아들이 태어났다.
그후 기아(飢餓)를 해결하기 위해 야곱이 72인의 가족을 이끌고 애굽으로 들어갔다. 이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요셉 이후 400여 년의 역사의 흐름 속에서 노예 상태로 전락되어 하나님께 울부짖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하나님께서는 한 개인, 한 민족, 한 국가의 차원이 아닌 세계적인 비전을 가지고 부르셨음을 창세기를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제사장 나라였다. 그러나 이후 역사는 순탄치 못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으로 열 지파의 북 왕국 이스라엘,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의 남 왕국 유다로 분열되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 제국에 정복 당하자 혼인 정책으로 민족 정체성이 많이 사라졌다.(BC722) 유다는 바벨로니아에 정복되어 70년간 포로 생활을 했다.(BC586) 포로 귀환 후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이 명맥을 이어 가면서 ‘유대인’ ‘유대주의’(Judaism)라는 이름이 나왔다. ‘유대주의’는 성전 율법 중심이다. 이스라엘의 독립과 회복의 갈망이다. 2천여 년 동안 나라 없이 세계 곳곳에 흩어진 디아스포라(Diaspora)가 되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이 가진 소망은 ‘메시아'(Messiah)였다. ‘메시아’ 사상은 형극(荊棘)의 고난 속에서 그들을 붙들어 주었다. 이스라엘 역사만이 가진 유일한 신앙이자 사상이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표적은 메시아의 표적을 의미하며 메시아를 입증할 수 있는 표적이었다. ‘나사렛 예수’는 과연 그들이 기다려 온 메시아인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다. 이것은 놀라운 기적에 대한 순간적인 반응이었을까? 일종의 확신에서 나온 것이었을까?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인 메시아였다는 믿음이 그들의 마음과 정신 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일까?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런 일이 있기 전에도 베드로는 예수님에 관한 감동적인 고백을 한 적이 있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모든 고백 중에서 가장 완전한 것이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때 그분은 ‘오랫동안 기다리던 메시아,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중보자로서 성부에 의해 구별되고 임명 받은 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은 그가 자기 백성의 예언자이시며 유일한 대제사장, 영원한 왕이시라는 것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베드로의 고백은 어떤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없는 고유한 의미다. 예수님은 현재 과거 미래 언제나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즉각적이고 명확하며 따뜻하게 칭찬을 해주셨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시니라”
베드로의 고백은 베드로 개인의 고백이 아니라 기독교 전체의 신앙 고백이다. 왜냐하면 삼위일체적 신앙 고백이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이 물었다. “오실 그이가 바로 당신이오니이까?” 그리고 고백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참으로 아름다운 고백이다. “주는 나의 구주, 나의 반석, 나의 생명, 나의 하나님, 나의 피난처, 나의 도움이시다” 아멘.
*유다(Judah): 야곱의 네 번째 아들. 유대인의 왕국. 유대(Judea): 유대인, 유대 왕국이 있던 지역.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