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전라도가 고향이지요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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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의료선교와 제중·알렉산더병원의 희생과 헌신”

그는 1908년 추운 겨울에 추위를 무릅쓰고 화순 지방 순회 전도의 길에 나섰다. 그런데 그 해 12월 추운 어느 날 갑자기 기관지염이 폐렴으로 옮겨가면서 건강은 말할 수 없이 악화되고 말았다. 이에 놀란 지역 주민들은 지게에 오원 선교사를 지고 광주까지 갔으며, 이때 목포 프렌치병원에 있는 보의사 선교사를 광주까지 올라오도록 했다. 그러나 끝내 그는 사망하고 말았다.

광주에 있는 선교사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보의사 선교사는 몇 번이고 땅을 치면서 나주에서 만난 여자 때문에 선배 선교사를 죽였다고 한없는 눈물을 흘리면서 나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자세하게 말했다.

“내가 목포에서 기선으로 올라와 영산포에 내려 나주를 지나오는데 웬 여자가 쓰러져 있기에 가만히 내려가 쳐다보았더니 문둥병에 걸린 여인이었습니다. 곧바로 이 여인을 말에 싣고 양림촌으로 왔지만 이미 오원 선교사는 세상을 떠난 후였습니다.”

얼마 동안 그 여인을 돌보다가 다시 목포로 내려갔다. 그 동안 윌슨 선교사가 봉선동 나병원에 근무하고 있었기에 그런대로 광주 제중병원은 유지할 수 있었으나, 여천 애양원으로 내려가자 할 수 없이 윌슨 선교사도 여천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이때 광주에는 의사가 없어 군산에서 활동하고 있던 브랜드 (Dr. Louis Christian Bland, 한국명 : 부란도, 이하 부란도로 표기) 선교사가 광주 제중병원으로 오게 되었다. 부란도 선교사는 1924년 군산 예수병원에서 의사로 활동하다가 1930년 광주로 전임되었다. 그런데 그가 광주에 온 지 8년 만에 그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말았다. 그의 시신은 지금도 양림동 동산에 안장되어 있으며, 그의 부인 메리 알버트는 남편을 제2의 고향 광주에 묻고 1938년 자녀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귀국했다.

이러한 관계로 광주에 있는 지역 교인들이나 그 인근에 있는 많은 교인들은 그의 희생에 대해서 몹시 안타깝게 여겼다. 그렇게 광주 교인들 그리고 광주 시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부란도 선교사는 1896년 8월 1일 미국에서 출생했다. 조지 워싱턴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의사가 되겠다는 의지를 갖고 버지니아대학 의학부에 진학해 그 곳에서 의사로서 실력을 쌓았다. 그는 인턴 생활을 마치고 1924년 4월 16일 부인과 함께 선교사로 군산 예수병원과 광주 제중병원에서 의사로 사역하다가 삶을 마감했다.

그런데 부란도 선교사가 광주 제중병원에 부임한지 얼마 안 된 1933년 10월에 뜻하지 않은 화재가 발생했다. 다행히 간호사, 병원 직원들, 조금 몸이 양호한 환자들의 협조로 진화를 할 수 있었다. 병원의 모든 기구나 약품은 그대로 불에 타 재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 병원이 화재로 다 타버린 후에 뜻하지 않게 광주 시민들의 자발적인 운동이 일어났다.

“광주 시민 여러분, 광주 제중병원을 우리의 손으로 건축합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캠페인에 동참하면서 돈이 모아지기 시작했고, 이에 놀란 교인들도 믿지 않는 광주 시민들에게 뒤질세라 더 열심히 헌금에 앞장섰다. 이 운동이 미국에 있는 선교 본부에까지 알려져서 미국에서도 모금에 앞장서 거액의 선교헌금이 전해졌다. 이렇게 해서 다시 양림동에는 그 전보다 훨씬 좋은 병원 시설을 갖게 되었으며,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은 호남 지방에 있는 병원과 의료 선교사들의 활동이 얼마나 컸는가를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 후 광주 제중병원은 잘 운영되었지만 일본이 중일 전쟁을 일으키면서 서서히 경찰의 감시가 병원으로 옮겨졌고, 그로 인해 더 이상 운영하지 못하고 문을 닫고 말았다.

순천 알렉산더병원과 선교사들

한편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의 마지막 사역지인 순천에 선교부가 생기자 순천에도 미션병원을 설립했다. 이때 미국 선교 본부에서는 1913년 팀몬스(Dr. H. L. Timmons) 의료 선교사와 그리어(Miss A. L. Greer) 간호 선교사를 파송했다. 우선 이들은 황무지 같은 순천에 병원 건물을 신축하고 진료에 임했는데 뜻하지 않은 환자들이 모여들자 기쁜 아우성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졌다.

이미 개척자로 왔던 변요한 선교사는 목포, 광주 지방의 선교 경험을 살려서 팀몬스 의료 선교사를 잘 협조함으로써 진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 소식이 미국 선교 본부에 알려져 많은 기금이 순천에 오게 되었고, 그 기금으로 건물이 완공되자 1915년에는 그 기금을 헌금했던 사람의 이름을 따서 순천 알렉산더병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팀몬스 선교사가 전주 예수병원으로 이동해 가자 순천 알렉산더병원은 1917년 로저스(Dr. James M. Rogers, 한국명: 로제세) 선교사가 미국 선교 본부에서 파송을 받고 오게 되었다. 그는 1892년 미국에서 출생했으며, 데비슨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기 위해서 버지니아대학 의학부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한국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순천 알렉산더병원에 부임했다. 그는 시설의 미약함을 발견하고 시설을 확장하는데 앞장섰으며, 이 일로 미국 교회로부터 많은 선교비를 지원받았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주로 병원 원장실에 거하면서 기도에 열중했다. 기도만 하는 원장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친히 실천했던 의사였기에 그를 가리켜서 작은 예수라고까지 불렀다.

그는 천성이 의사로 적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그는 호남 지방에 많은 병원이 있지만 제일 큰 병원, 제일 좋은 병원, 제일 친절한 병원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그 병원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더욱이 밀려오는 환자를 보고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더 열심히 진료에 임했으며, 처음 맞는 안식년이 돌아왔지만 그 안식년을 반납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만 있으면 병실에 입원해 있는 환자를 방문해 친절하게 그들을 보살펴 주었다. “하나님, 이 환자가 수술을 받고 몹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 고통을 잊을 수 있도록 주께서 이 환자에게 성령의 힘을 부어 주시옵소서.”

이것이 그의 기도였다. 그리고 주말에는 미국인 간호사나 한국인 간호사가 한 팀이 되어 농어촌 진료길에 나섰는데, 여기저기서 10% 환영의 인파가 몰려왔다. “원장님, 원장님의 수술로 제 병이 깨끗해졌습니다. 원장님, 오늘 우리 동네에 오시는 것을 두 손 들어 환영합니다.”

안영로 목사

· 90회 증경총회장

· 광주서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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