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이 빈번하게 행해진 결과로는 소위 사면을 함으로 한 것에 대한 폐단을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즉 사면을 실시해 죄수 전부를 석방하면 그때는 감옥 안에 갇힌 한 사람의 죄수도 머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당연한데 관련 업무를 하는 관청은 이를 어진 정치를 하는 왕의 덕의 징표라고 해 경축하는 것을 예로 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면 후 형부로부터 옥이 비었다는 뜻을 아뢰면 재상은 즉시 들어가서 왕에게 아뢰었다.
1105년(숙종 10년) 11월 안옥(犴獄)을 새롭게 경영해 대사를 시행하고 죄인을 모두 석방했을 때도 어사대는 ‘옥공(獄空)’이라고 하는 두 글자를 써서 큰 길거리에 내걸고 이로써 성조(盛朝) 형조(刑措)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재상은 또한 입궐해 하례를 표했으나, 어떤 유식자가 있어 이를 비방하고 나무랐다. 그것은 재상으로 하여금 거짓을 품고 아첨을 바치고 나이 어린 군주를 인도해 교만한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이라고 나무랐다. 이와 같은 일은 완전히 왕에게 권해 세상 사람을 기만한 것이라고 해야 한다. 이와 같은 예는 그 밖에도 얼마든지 있다. 또 이러한 일도 있었다. 즉 1280년(충렬왕 6년) 왕이 편안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사(大赦)를 시행했을 때 승선(承宣) 홍자번(洪子審)이 ‘해마다 사(赦)가 있고, 사(赦)는 하여간 수많이 하면 범죄자가 늘어 무리가 되므로, 구전(口傳)하여 죄수를 석방해서는 안된다.’라고 임금에게 아뢴 바, 왕은 이를 듣고 따랐다고 한다. 이는 사(赦)가 빈번했기 때문에 이를 억제하지 않아 범죄가 증가하는 것과 같은 악영향을 가져오는 것을 두려워해 일반에게 사전(故典)을 알리지 아니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시행하도록 했다. 은사가 빈번하게 계속된 결과 이와 같은 폐해도 발생하기에 이르렀지만, 때때로 모든 죄수의 석방으로 옥사의 밑바닥 먼지를 떨어낼 수 있었고, 구금의 어려움과 죄수의 건강에 미치는 바의 해로운 영향이 감소 완화를 도모할 수 있는 점에서는 은전은 또한 옥을 다스리는 데 커다란 편익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1018년(현종 9년)에 막 가을걷이를 하려고 하는 때에 비황(飛蝗)이 해를 끼치기에 이르러 필경 형정(刑政)이 옳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서울과 지방의 죄수 가운데 유형(流刑) 이하의 자에 대해서는 속히 보방(保放)해 출옥시키도록 명했다. 입보(位保) 출옥의 예는 여기서 최초로 보여진다.
김성기 목사 <세계로교회>
한국교도소선교협의회 대표회장
법무부 사)새희망교화센터 이사장
대한민국새희망운동본부 대표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