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나라마다 권력의 칼자루를 손에 쥔 독재자가 있다. 우선 독일에 히틀러(1889-1945)가 1934년부터 1945년까지 권력의 칼자루를 휘두른 독재자였다. 독일민족 우수주의에 빠져 죄없는 유대민족을 홀로코스트(유대민족학살)를 자행했다. 유대민족을 잔인하게 학살한 흔적은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비롯 도처에 남아있다. 살인마 최후는 1945년 4월 30일 자살이었다. 또 하나의 악마 독재자 구소련 칼자루 독재자 스탈린(1878-1953)도 레닌 뒤를 이어 권력의 칼자루를 쥐고 우리 짚신겨레에게 잔인한 행위를 했다.
1937년 집권 당시 고려인 17만1천781명을 척박한 땅 중앙아시아로 내쫓았다. 열차이동 중이나 현지에 도착해 1만6천500명 내지 5만 명에 이르는 희생자가 나왔다. 강제이송 이유는 만주를 점령한 일본군 간첩이 고려인 중에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2천500명에 해당하는 고려인을 스탈린은 처형하기도 했다. 고려인을 일제시대 척박한 죽음의 땅으로 강제이주 시킨 살인마 칼자루 권력의 독재자 스탈린은 북한 공산 독재자 김일성에게 소련제 탱크 242대와 무기와 대포와 총을 공급하며 1950년 6월 25일 불법남침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을 일으키게 했다. 무방비상태로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으나 1950년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지휘로 전세는 역전되어 전선은 평양이 점령되고 압록강에 피묻은 총칼을 씻으며 백두산 영봉에 통일의 태극기를 휘날릴 기쁨의 순간이 왔다. 살인마 칼자루 독재자 스탈린의 후원만으로는 전선이 북한 전역이 거의 점령상태에 이르자 또 하나의 중국 공산당 권력의 칼자루 두목 모택동(1893-1976)을 찾아간 김일성 북한 수상이 중공군 군사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지금 북경 천안문 광장에 중국 인민공화국 독재자 모택동 초상화가 건재하게 걸려 있다. 이 천안문 광장은 1989년 중국 자유 민주주의 시민혁명을 외친 선량한 인민들 수백만이 희생된 곳이다. 모택동 주의자들로 구성된 홍위병들이 1966년부터 1968년까지 잔인한 문화대혁명을 자행하기도 했다. 모택동은 항미원조보가위국(抗美援朝保家爲國)을 목표로 내세워 팽덕희(1898-1974) 장군 원수를 총사령관으로 중공군 25개 군단 79개 보병사단 등 약 230만 대군이 1950년 10월 19일 압록강을 건너 한국전에 참전케 했다. 다시 38선을 넘어 왔으나 1953년 7월 27일 휴전 무렵 중공군은 사망자 18만3천 명 부상자 약 80만 명을 남기고 물러갔다. 김일성은 중공군의 원조 대가로 백두산 15봉우리 중에 천지 호수를 둘러싼 7개 봉우리를 모택동에게 바쳤다. 우리 국토를 중국에 넘긴 반민족적인 행위가 아닐 수가 없다. 북한지역 사망자도 28만 명 국군 사망자도 14만 명에 이른다.
나는 칼자루 권력 독재자로 히틀러, 스탈린, 모택동의 행동을 살펴 보았다. 살인마 히틀러는 인류에 큰 상처를 남겼다. 스탈린은 우리 민족에게 큰 죄악을 저지르고 구 소련연방 독재행위로 인근 작은 나라를 공산 위성국가로 횡포를 부려 남긴 원한도 크다. 장개석(1887-1975) 총통을 물리치고 중국본토를 장악한 모택동은 중국 공산주의 확산을 위해 민주주의를 짓밟고 우리 남북통일을 막은 우리의 원수가 아닐 수 없다. 스탈린이나 모택동의 정치세력을 등에 업고 수립된 북한 정권은 속히 자유의 민주꽃이 피어야 하겠다. 우리 대한은 링컨(1809-1866)의 게티즈버그 연설 그대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로 잘 발전해 가야 하겠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