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선교] ‘전근대 한국행형사’ 중고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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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을 군사에 이용한 것은 그 수년 후에도 있었다. 즉 1284년(충렬왕 10년)에 왜구를 막기 위해 여러 도(道)에 유형수로 하여금 배를 타고 왜구를 사로잡아오는 자에게는 죄를 사해준다는 취지의 영(令)을 발한 적도 있었다. 이것은 원종왕 때에 죄수에게 해전을 익히도록 한 예를 본딴 것일 것이다.

1391년(공양왕 3년) 오랜 비로 인해 서울의 죄수 150명을 석방한 일이 있었다. 이것은 당시 서울에 있었던 죄수 전부였는지 또는 그 대부분이었는지는 불명확하지만 결국 석방이 필요한 만큼의 수를 석방했을 것이다. 또 비 때문에 죄수를 해방했다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바가 있지만 덮개의 설비가 없는 것 같은 장소에 구금해 둔 죄수가 오랜 비가 오는 때에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해방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비상해방이었기 때문에 이조판서 조온(趙溫)을 그곳으로 파견해 죄수 안치(安置)를 석방한 적이 있었고 이것도 마찬가지로 비상해방이었다.

1392년(공양왕 4년) 헌사(憲司)의 상소인 ‘감옥은 죄인들이 모이는 곳으로 나쁜 기운이 빠르게 전염되고 질병이 생기기 쉬워 자신의 죄로 죽는 것이 아니니, 매우 딱합니다. 바라건대 의관(醫官) 한 사람을 6개월마다 서로 교대하여 전적으로 감옥을 맡게 하여 매일 병든 죄수의 증세를 살피고 약을 조제해 치료하게 하시어 재앙을 대비하소서’에 따라 전옥서에 의관을 배치하고 형조는 정좌랑(正佐郞)으로 해서 옥관 의관의 근태를 고찰하는 것으로 정했다.

고려 초기에 적용된 형률은 이를 상세하게 할 수는 없지만 생각건대 예로부터 내려오는 형벌을 답습하고 전례에 따라 이를 적용하면서 다소의 증감을 더해 시대의 요구에 따르도록 한 것에 지나지 아니한 것 같다. 그런데 당의 제도 문물을 모방하는 상황에 이르러서부터 형정에도 혁신을 재촉해 마침내 성종왕 때에 이르러 당률(唐律)을 모체로 하고 그 당시 사정에 맞는 것을 참작하고 번거로운 것을 삭제하고 문서로 해서 성립된 소위 고려 형법을 제정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때까지의 형벌의 종류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의 참형(斬刑)과 그 후 언제부터인지 실시되어 온 유형, 장형 및 벌동(罰銅) 등에 지나지 아니했다.

김성기 목사 <세계로교회>

 한국교도소선교협의회 대표회장

 법무부 사)새희망교화센터 이사장

 대한민국새희망운동본부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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