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아픔과 희망이 담긴 YMCA 회관 건립 이야기
정초석에 새겨진 영친왕의 마지막 글씨
YMCA (4)
YMCA에서 오래 머물고 있는 것 같지만 한 가지 더 살펴보고 지나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이 회관을 처음 건축했을 때 박았던 정초석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건물 현관에 들어서면서 벽에 부착된 정초석을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잘 보면 왠지 건물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색깔의 돌에 새겨진 정초석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특별한 글귀가 담긴 것도 아니다. 다만 “年七百九千一” 어설픈 듯 쓰인 글씨뿐이다. 갈색 대리석에 새겨진 것인데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한 번 서서 찬찬히 살펴보기를 권한다.
YMCA는 처음부터 회관이 준비돼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근처에 있었던 중앙감리교회가 사용하던 한옥 건물을 빌려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YMCA는 시작부터 학관(學館)을 열어서 여러 가지 학습과 기술, 체육 등을 가르쳤는데 입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1904년 시작하자마자 상상 이상의 많은 젊은이들이 수강하기를 원했다. 불과 4년이 지났을 때 이 학관은 수용이 불가능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특별히 서양의 체육활동에 관심이 높았고 한편으로는 정치, 사회적인 측면이 관심을 끌었다. 그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이상재, 윤치호, 안창호 등과 같은 개화파 정치인들과 최병헌, 이승만, 김규식, 전덕기 등과 같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함께하는 계몽운동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 이로 인해서 더 넓은 공간이 절실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신자는 아니지만 역시 개화파 정치인인 현흥택(正領)이 YMCA의 활동에 고무되어 1906년에 회관 건립을 위한 대지(종로 2가 9)를 마련해 주었다. 그는 자신이 준비할 수 있는 땅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권해 회관건립에 필요한 대지 1천200평을 마련해 주었다. 회관건축을 위한 비용은 국내에서만 아니라 국외에서 모금을 했는데, 미국의 워너메이커(J. Wanamaker)가 당시 돈 4만 달러를 기부함으로 건축이 가능했다. 이 돈은 회관건립을 위한 거의 전부였다고 할 만큼 큰 것이었다. 기금이 마련되자 곧 건축이 시작되었다. 중국 상해 비슬리회사의 돈햄(B. C. Donham)이라는 사람이 설계를 했고, 중국인 해리 장(Harry Chang)이 감독으로 참여해 1907년 5월에 건축을 시작했다. 3층으로 된 르네상스 양식의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은 같은 해 11월 14일 상량식을 하게 되었다.
상량식은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한옥만 있었던 서울에 명동성당과 함께 새로운 명물로 등장하게 될 서양식 건물이 지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량식에는 조선 정부를 대표하는 이완용(총리대신)과 서울에 주재하는 외교관들, 그리고 조선에 대한 실권을 행사하고 있던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조선의 황태자인 이은(李垠, 영친왕)이 참석했다. 이 때 황태자의 나이가 11살의 소년이었다. 그런데 통감 이토는 황태자의 후견인을 자처하면서 밀착해 감시했다. 이토는 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를 대동하고 황태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이것은 당시 조선의 정치적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상량식에 참석해서 훗날 영친왕이 된 황태자가 상량문을 썼던 것인데 지금은 이것만 남았다. 6·25전란을 겪으면서 파괴된 건물 잔해들 가운데 찾아낸 것 가운데 앞에서 살펴보았던 돌기둥과 함께 거의 유일한 유물이다. 영친왕이 11살 때 쓴 마지막 글씨인 이 정초석은 작은 돌조각이지만 이 회관 벽에서 비운의 주인공이면서 조선의 마지막 왕세자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11월 14일, 11살의 나이에 회관 상량식에 참석해 이 글씨를 남기고, 그는 다음 달인 12월에 이토에 의해서 일본으로 유학을 명분으로 강제로 보내지게 되었다. 결국 영친왕이 왕세자의 신분으로 있을 때 남긴 마지막 글씨가 이것이다. 이것을 예필(睿筆)이라고 하는데, 곧 왕세자의 글씨를 높여서 칭하는 것으로 조선의 아픔과 어린 황태자의 마음이 담긴 글씨라고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살펴본다면 의미가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글씨에 대해서 잘 모르니 무엇이라 평할 수는 없고 다만 이에 대해서 아는 이들의 말을 빌리자면 이 글씨를 해서체라고 한다. 그런데 이제 11살인 황태자의 글씨로서 “침묵을 강요당한 당시의 상황에서 그의 마음을 담은 글씨”라고 한다.
이종전 박사
인천기독교역사문화연구원 원장
개혁파신학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