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달라졌다. 전에는 자식이 많으면 다복하다고 했다. 그게 곧 노동력이었다. 자녀로 인해 노후가 안정되고 보장됐다. 그러나 지금은 자녀들이 부담이고 짐이 되는 세상이다. 오래 전 프랑스에서 폭염으로 2만 5천 명의 노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자녀들한테 전화가 혹시 오지 않을까’ 기다리면서 전화기 옆에서 죽어갔다고 한다.
예전엔 가정의 중심이 어른이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이 가정의 중심이다. 산에 가면 산삼, 바다에 가면 해삼, 집엔 고삼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자녀 중심으로 돌아간다. 집안에 입시생이 있으면 고3이 왕이다. 자녀에게 모든 것을 쏟다가 삶이 불행해질 수 있다. 자식의 효도기간은 5세까지라고 한다. 미운 7살부터 말썽을 부리고 사춘기, 대학교, 결혼에 이르기까지 부모는 자녀에게 신경 쓰는 일이 많다. 그런 아들도 장가보내면 딴 여자의 남편이 된다. 아들은 군대 보내면 ‘국가의 자식’이고 잘난 놈은 장가보내면 ‘딴 여자의 남편’이요, ‘장모의 자식’이라고 한다. 못난 자식만 내 자식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요새 젊은이들 결혼 조건 중에도 부모관련 조건이 있다. 부모의 노후대책이 되어 있는가를 묻는다. 그것은 부모님한테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없고 부양책임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장가시집 가도 부모를 의당 모시려 했던 문화는 옛날이야기다. 이것이 현실이고 시류인걸 받아들여야 한다.
자녀는 교육시키고 결혼했으면 그것으로 a/s는 끝내야 한다. 풍족하지도 못하면서 늦게까지 자녀 a/s하다가 초라한 노년을 맞게 된다. 자식한테 의지하려는 마음은 접어라.
평소에는 자녀들이 잘 찾아오지도 않는 어느 시골마을에 사는 부모들한테 지역개발 보상비로 거액이 나왔다. 시골집에 큰돈이 생기자 평소 잘 찾지 않던 자녀들이 주말마다 내려온다. 평소 한산했던 마을의 시골도로가 막힐 정도로 교통 혼잡을 이루었다. 손자들을 데리고 부모에게 인사하러 오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아들 며느리가 오면 무엇을 얻으러 왔는가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아들과 며느리가 오면 ‘2인조 강도’ 같다. 딸, 사위는 ‘날강도’다. 손자들은 ‘좀도둑’이다. 명절 때는 이들이 한꺼번에 떼 지어 몰려온다. 그야말로 ‘떼강도’다. 그것도 부모가 잘 살아야 찾아온다. 부모가 돈이 없으면 찾아오지도 않는다.
예전엔 자식 잘 되는 게 노후보장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게 아니다. 확실한 노후대책은 자식한테 손 벌리지 않는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그런데 피보다 더 진한 것이 ‘돈 촌수’다. 점퍼차림으로 운동화 끌고 병원에 입원해도 자녀들이 부지런히 들락거리고 찾아온다면 돈을 끝까지 쥐고 있는 사람이다. 가족들을 거느리고 멋지게 입원했어도 얼마 지나니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면 상속을 이미 다 마친 사람이다. 부모가 상속을 끝냈느냐, 돈을 쥐고 있느냐의 차이다. 상속에도 지혜와 전략이 필요하다. 자식들은 부모한테 의존을 하지만 부모는 자식한테 의존이 안 되는 세상이다. 다 늙어 자녀들이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를 접어라. 내 삶의 후반전을 내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다.
노년에는 자녀들한테 손 벌리지 말고 오히려 손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
두상달 장로
• 국내1호 부부 강사
• 사)가정문화원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