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약자석 앞에서의 양보와 존중… 대한민국 미래를 비추는 성숙의 지표
선진국에 진입한 대한민국에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서 만든 노약자 배려석을 두고 논란을 벌이는 모습은 선진 국민으로서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지하철을 타다 보면 노약자석과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가 서로 눈치를 보거나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며 때로는 언성이 높아지는 장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한다. 단순한 자리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성숙도와 세대 간 이해 부족을 드러내는 단면이라 더욱 안타깝다. 필자가 1호선 경인전철(국철)을 타고 다닐 때 임산부석에 50~60대 여성분이 앉아있는 모습을 종종 볼 때가 있다. 임산부석은 몸이 불편한 임산부가 언제나 앉을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양보와 배려가 아닌 섬김의 자세로, 임산부가 몸이 불편하면 언제나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애초에 지하철 노약자석은 법적 ‘의무석’이 아니라 ‘배려석’이다. 누구든 앉을 수 있으나 노인이나 임산부, 몸이 불편한 이가 오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전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앉아도 된다’와 ‘앉으면 안 된다’라는 서로 다른 해석이 충돌한다. 젊은이가 자리에 앉아 있으면 시선이 따갑고, 노인이 빈 배려석 앞에 서 있으면 양보하지 않는 젊은 세대를 향한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의무와 배려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다.
문제는 제도 자체보다도 시민 의식에 있다.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배려석 논란이 거의 없다. 시민 스스로 배려를 자연스럽게 실천하고, 양보는 당연한 습관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내 권리냐, 네 의무냐’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머물러 있다.
자리 양보가 상대방을 위한 ‘헌신’이 아니라 불필요한 ‘희생’으로 여겨지는 풍토가 문제다.
이제는 시각을 달리해야 한다. 노약자석은 법이 강제하는 자리가 아니라 인간적 배려를 사회적으로 상징화한 장치다. 양보는 선택이 아니라 공동체 의식을 지키는 최소한의 약속이다.
노인 세대는 젊은 세대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젊은 세대는 노인 세대의 삶의 무게를 존중할 때 갈등은 줄어든다.
특히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에서 지하철 노약자석 문제는 더 이상 소모적 갈등의 소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이 들어 언젠가 자신도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배려는 당연한 행동이 될 것이다.
이제는 ‘누가 옳고 그르냐’의 논쟁을 끝내고, 작은 자리 하나에서도 성숙한 사회의 품격을 보여줄 때다. 우리 사회의 약자인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지하철과 같은 공공의 시설을 이용하면서 불편을 최소화하고 인간다운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사회의 모든 일원들이 사회통합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은 어떨까?
지하철의 한 칸이 우리 사회의 거울이라면 노약자석 앞에서의 양보와 존중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비추는 성숙의 지표가 될 것이다.
박용창 장로
<사회복지칼럼리스트, 제삼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