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레미야의 예언
니체는 이 시를 통해 언어의 생명성을 보여준다. 인간이 의식하고 표상하는 정신적 생명 현상임을 보여준다. 언어의 생명 – 어떤 언어를 쓰고 어떻게 말하는가에 따라 심성과 인격에 영향을 준다. 유대인의 격언에 “말은 당신의 노예지만 입 밖에 나오면 당신의 주인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언어가 인간의 사유체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지금 우리가 어떤 언어를 어떻게 쓰고 있는가를 진단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존재’란 니체가 ‘언어’에서 보여준 언어의 존재, 현신(現身)하는 존재일 것이다.
현직 판사님 한 분이 짬뽕 광고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다음은 이를 보고 쓴 필자의 민담시이다.
한 판사님께서 느닷없이 ‘가카새끼 짬뽕’을 만들어 팔았더랍니다. /상표 이름에 놀란 많은 사람들이 귀를 의심해, 온 나라에 소문이 퍼져나갔습니다. 기발한 상표 덕분에 명성을 얻은 판사님, 이번엔 한수 더 떠 ‘가카게 (개) 새끼’표 짬뽕을 만들어 팔았더랍니다./여러분 ‘가카게 새끼 짬뽕’/들어 보셨나요? 먹어 보셨나요? /게 새끼가 함정이었습니다/멋진 야유와 풍자라구요?// 판사 자격증 가진 여러분! (중략)/말재간으로 먹고사는 법조인들/‘가카 새끼 짬뽕’ 먹어 보고/어떤 맛인지 많이많이 홍보해 주셔요.
(필자의 민담시 ‘가카 게 새끼 짬뽕 먹어 보셨나요?’)
시의 언어가 사변적일 때 생명이 없는 설명문으로 그칠 수 있다. 시의 기능이 당대의 문화적 단위로서의 개연성을 드러내는 상징적 구조가 되기도 한다. 앞에 인용한 두 판사의 말과 글은 서로 상반된 언술을 보여준다. 생명의 언어를 죽이기도 살리기도 했다는 점에서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시에 동원된 어휘들은 비로소 특유의 생명력을 발휘하게 된다. 시인이 특정 목표나 의도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언어를 활용했다면 그 시의 순수성은 반쪽이 되기 쉽다. 무상(無償)의 순수 상태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이는 순수시가 지향하는 신념이기도 하다.
신(神)의 소명(召命)을 예언하는 자/이스라엘, 그 참담한 나락으로/낙엽처럼 떨어져 갈 때/그는 희망을 계시(啓示)한다//인내하는 신의 이름으로/신성한 인격으로/그 백성이 다시 태어나길 기원하는 에레미야//지금,/이 나라에/이 백성의 영혼 속으로/희망을 선포하는 자/살아있는 예언자는 없는가.(필자의 시 ‘에레미야’ 전문. ‘에레미야’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대에 하나님의 소명으로 태어난 선지자였다)
에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와로부터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는 음성을 듣는다. 조국 이스라엘을 죄악으로 멸망할 것이나 이를 용서하고 구원하시겠다는 메시지를 받은 것이다.
이 역시 죽음의 현상을 생명(구원)의 언어로 승화시킨 것이다.
박이도 장로
<현대교회•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