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한국교회 순교자들 (4) 남궁혁 목사 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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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한인 사진작가, 남궁요설의 회고전

장학금으로 한인 후학 양성에 지대한 헌신 

시애틀의 전설적인 한인 사진작가 남궁요설 씨는 반세기에 걸친 자신의 작품 활동을 보여주는 사진집 《Johsel Nam kung, A Retrospective》 출판기념회를 자신의 모교인 워싱턴대학 케인홀에서 가졌다. 그는 조이 시애틀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에 발행한 사진집은 40여 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인 작품 활동의 총결산”이라며 “모두 100점의 소중한 사진작품들이 수록돼 있으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일반인에게 처음으로 공개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남궁 씨는 이번 출판기념회에서 자신의 작품들을 보고 느끼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반세기 가까운 작품 활동 업적을 누군가가 계속 이어나갔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출판기념회에서는 그가 오래전에 촬영한 설악산의 비경을 병풍으로 제작한 작품도 전시되었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도 그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던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일본에서 남궁 씨와 함께 공부한 작곡가 김순남 씨의 딸 김세원 씨가 한국에서 참석하고, 시애틀 시의원을 역임한 짐 콤튼 씨가 남궁 씨의 시를 낭독했다.

평생 자연을 주제로만 사진 활동을 해온 남궁 씨의 사진집은 1967년부터 2002년까지 촬영한 작품들과 함께 개인의 일대기를 소개하는 내용도 수록해 일반인들을 위한 사진집, 친필사인이 들어 있는 슬립 케이스와 딜럭스 박스 등 다양한 판형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열세 살 중학생으로 독일가곡 ‘보리수’를 한국말로 번역한 남궁 씨는 16세에 배재학당에서 ‘보리수’를 원어로 불러 찬사를 받았다. 이날 기념회에서 시애틀 평강장로교회 남성 4중창단이 ‘보리수’를 불렀다. UW도 지난해 150주년을 맞아 모교를 빛낸 150인에 선생을 선정하기도 했다. 남궁 선생은 워싱턴 주 한인 미술인 협회에 참석하는 한편 매년 1천 달러의 장학금을 내놓으며 한인 후학 양성에도 남다른 헌신을 해왔다.

남궁혁 박사의 손자 남궁건이 남긴 다음의 말은 할아버지인 남궁혁 박사의 나라 사랑의 마음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일본에 살 때 다니던 교회 목사님이 ‘증조할아버지나 할아버지처럼 조국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늘 말씀하셨다. 수천 번은 들었을 것이다.”

할아버지 남궁혁의 나라 사랑은 그의 후손에게도 그대로 연결되어 흐르고 있다.

손자인 남궁건(미국명 토니 남궁)은 전 UC 버클리대 동아시아연구소(Institute of East Asian Studies) 부소장으로, 1990년대에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있었던 북한 고위 관료와 대화 한 토막을 소개했다. 미국 국적의 남궁건 전 부소장은 평양과 워싱턴 간의 비밀 접촉을 수없이 성사시킨 중재자이자 미국 내 아시아 문제 전문가였다. 북미 막후 교섭을 위해 줄잡아 60회 이상 북한을 방문했다.

그에게는 북미 교섭 중재 말고도 최선의 노력을 쏟게 하는 숙제가 하나 더 있었다.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할아버지 남궁혁 목사가 전쟁이 터진 1950년 8월 납북되어 공산당 선전에 종사하도록 강요당했으나 이를 거부함으로써 많은 고초를 겪었다. 전 YMCA 회장을 지낸 구자국 씨는 용판동 근처에서 절명했으며, 남궁혁은 중태에 빠졌고, 전 조선신학교 교장이던 송창근 목사와 오택관은 걸음을 잘 걷지 못해 인민군의 등에 업혀 11월 10일 강계에 도착했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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