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저일 생각하니] 일본 야스쿠니신사 문 닫고 교회 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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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섬나라 신도(神道)의 신사(神社) 우상 종교시설이 약 8만 개 정도가 있다.

자연물이나 천황 가계, 전몰장병 등이 제사의 대상이 된다. 일제시대 우리나라에도 남산신궁을 비롯 전국에 1천30개 정도 세워두고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일본귀신 신사참배는 저주의 우상숭배로 반대에 앞장섰던 평양산정현교회 일사각오의 주기철 목사를 비롯 50여 명이 순교했다. 

애향원 손양원 목사는 십계명 제1조에 반대되는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4년의 옥고를 치루고 6.25 때 잔인한 공산당 총에 순교했다. 박관준 장로 많은 신앙 간증저서를 낸 안이숙 여사도 신사참배 반대로 여러해 옥고를 치뤘다. 1938년 9월 9일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일제가 신사참배는 종교의식이 아니고 국가의식이라는 일제 총독부 주장에 굴복한 조선예수교장로회는 27회 총회에서 홍택기(1893~?) 목사는 “아니오” 반대는 묻지 않고 “예” 가표만 소수인데도 신사참배 참여안건을 통과시켰다. 

1938년 12월에 김길창 부총회장 감리교 양주삼 목사, 성결교 이명진 목사 등이 일본에 건너가 이세신궁(伊勢神宮)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에 절하고 돌아왔다. 일본 황실을 숭상하는 이세신궁이나 국립묘지 성격의 전몰자를 제사 지내는 야스쿠니신사는 이제 문 닫아야 하겠다. 이 두 신사에 아직도 일본 수상이나 각료가 드나들고 있다. 우선 없애야 할 야스쿠니신사부터 그 부당성을 살펴보자.

야스쿠니는 도쿄 중심지 지요다구(千代田區)에 자리잡고 있다. 일본의 영원한 평화와 영광을 기원하며 일본민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을 신분, 계급, 연령을 초월해 제사 지내는 곳이다. 기독교에서 보면 완전히 우상숭배 신사가 아닐 수 없다.

야스쿠니는 1869년 6월 메이지(明治)의 지시로 쇼곤사(招魂社)로 이름 짓고 시작된 신사이다. 그 뒤 1879년 ‘국가를 평안하게 한다’라는 의미로 야스쿠니로 개명한 것이다.

영령 87%가 한국에서 일으킨 청일전쟁(1884) 이후 일본의 대륙침략과 태평양전쟁에서 전사한 영령들 246만 명이 안치되어 있다. 이 가운데 한국인 영령 2만 1천 명도 안치되어 분노가 솟구친다. 일본의 패전 이전에 이미 창씨개명해 일본인으로 만든 일제가 한국인들 영령도 일본인으로 간주하고 야스쿠니에 합사시킨 것이다. 일제의 야만적 식민통치로 설움 받은 한국인 영령들이 왜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어야 하는가. 일본 국적으로 있는 불행한 영령들이 아닌가. 

이 분노스런 야스쿠니 행위에 유족들이 일본법원에 고소해 한국인 영령들을 빼오려 해도 일본법원의 판결은 패소나 기각처분으로 유족들의 주장을 무시해 버렸다. 야스쿠니신사에는 한국의 적대적 원흉들이나 A급전범들이 함께 합사되어 있다. 현재 야스쿠니에는 한일합병의 원흉 이토히로부미, 데라우치, 아베노부유키 등의 역대 조선총독들과 러일전쟁(1904) 영웅 도고체이자로 등의 영령이 제사를 받고 있다. A급 전범으로 도조히데키, 진주만 공격의 주역 야마모토 이소로쿠 등의 영령도 안치되어 있다. 

매년 4월과 10월에 신도의식으로 제사 지내는 야스쿠니신사에 고이즈미, 아베 수상을 비롯 일본 각료들이 신사참배로 우리의 반일 감정을 자극해 왔다. 남경학살사건으로 큰 피해를 입은 중국도 야스쿠니신사 행위에 비판을 하고 있다. 일본의 미신 우상적 존재 이세신궁 야스쿠니신사를 비롯 일본 전역 8만 개  신사가 대대적인 한국선교의 기도와 믿음으로 모두 십자가 우뚝 서는 교회로 서야 하겠다. 야스쿠니신사부터 당장 예수님 구세주로 모시는 야스쿠니교회로 하나님 사랑받길 우리 다함께 기도하자.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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