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한국교회 순교자들 (4) 정일선 목사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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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의 피 한 방울로 어머니를 살린 소년

평생 신앙과 배움으로 일어선 정일선 목사

정일선(丁一善) 목사는 1883년 7월 22일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그는 신앙이 돈독한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을 유산으로 물려받아 어렵게 자랐다. 그래서 한창 배울 나이에 공부하고 싶었으나 너무 가난해서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배우고 싶은 마음으로 기도할 뿐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덜컥 병들어 눕게 되었다. 먹는 것도 변변치 않은 데다 약 한 첩 쓰지 못하자 어머니의 병세가 심히 나빠지므로 그 어린 마음에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일선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는 울면서 어머니를 살릴 방도를 찾으려고 동리를 헤맸다. 그때 노인 한 분이 혀를 찼다. 그리고 지나가는 말로 “이런 때는 손가락을 잘라 흐르는 피라도 먹이면 혹 살아나는 법이 있는데….” 노인의 말이 그의 귀에 번쩍하고 들렸다. 그는 그 길로 집으로 달려갔다.

부엌에 들어가 칼과 도마를 찾았다. 식사를 준비해 본 적이 없으므로 칼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더듬어 찾아서 도마 위에 손가락을 놓고 칼로 내리쳤다. 붉은 피가 물총처럼 쏟아져 나왔다. 손가락을 움켜쥔 일선은 방으로 뛰어 들어가 어머니의 입에 피를 넣어 드렸다. 온통 어머니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다행히 어머니는 기적처럼 죽음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이가 들면서 정일선은 배우고 싶은 향학열을 억제할 수 없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 서당에 다녔다. 몸은 피곤해도 공부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즐거웠다. 이것이 그를 살려냈다. 그는 배워야 산다는 말을 항상 되뇌고 있었다.

그러다가 정일선은 늦은 나이인 27세가 되어서 숭실중학교에 입학했다. 통신강좌를 통해 중학교 검정고시를 치른 후였다. 그는 열심히 일해서 학비를 충당했다.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가장 노릇까지 해야 했으니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손에 잡히는 대로 노동이며 장사며 무엇이든지 했다. 그 어려운 신고의 세월을 보내면서 그는 중학교뿐 아니라 숭실전문학교까지 고학으로 마쳤다.

그리고 평양신학교에 진학해 함태영, 김길창과 같이 공부했다. 어려운 가운데도 항상 노력하고 기도하며 공부해서 1923년 제16회로 졸업했다. 그의 나이 40세였다. 정일선은 목사가 되기 위해 40년을 줄기차게 달려온 셈이었다.

그가 이렇게 끊임없이 신학교까지 달려온 이유가 무엇인지 자신도 잘 알 수 없었다. 특별한 소명감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모르는 가운데 부르신 것이었다.

그는 평양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꿈과 같은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평양 서문밖교회 당회장으로 부임했다. 정일선 목사는 신학교 시절 서문밖교회에서 조사로 3년 동안 재직했었다. 정일선 목사는 서문밖교회에 재직하며 숭의여학교에 강사로 출강했고, 몇 년 후에는 서문밖교회를 떠나 안악읍교회로 옮겼다.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는 황해도 선교를 위해 황해도에 선교기지를 세우기로 하고, 후보지로 황해도의 중심지인 해주와 안악과 재령을 검토했다. 안악이 후보지 가운데 하나가 된 것은 교회가 왕성했기 때문이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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