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2년(세종 14년) 하교에 ‘각 관아에서 더러 감옥을 만들지 않고 경내의 죄인들을 다른 관아로 옮겨 가둠으로써 왕왕 죄수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데 매우 곤란한 폐단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미 만든 감옥도 매우 좁아서 죄수들이 대거 모여서 늘 춥거나 더운 계절이 되면 병이 발생해 몸을 상하게 하기도 한다. 지금부터는 감옥이 없는 각 관아에는 감옥을 새로 짓고, 좁은 감옥은 고쳐 넓히며, 남자 죄수와 여자 죄수 및 죄가 가벼운 죄수가 거처하는 곳을 구별하며, 겨울에는 따뜻하게 하고 여름에는 서늘하게 해 “죄수를 불쌍히 여기고 신중하게 형벌을 행하는 어진 마음”을 널리 시행하도록 하라.’라고 한 것에 의해 이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전옥서는 무엇보다 당해 도면에 따라 건축됐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추관지(秋官志)에 따르면 아래와 같다.
전옥서는 본서 서린방(瑞麟坊)에 있고, 동서남의 세 방향은 여가(閭家)이고, 북쪽은 길이다. ‘청사 3칸 반, 방 1칸, 서리장방 2칸, 청 1칸’ ‘사령청 3칸, 상직방 1칸, 군사직방 1칸’ ‘남옥 동쪽 3칸, 서쪽 3칸, 북쪽 3칸’ ‘여옥 남쪽 2칸, 서쪽 3칸’ ‘옥문 1칸, 대문 2칸, 협문 1칸, 홍살문 1칸’이라고 기재되어 있고 옥사는 남옥, 여옥을 합쳐 14칸으로 따라서 수용면적은 불과 25평에 지나지 아니할 정도로 협소했다. 또한 모양은 둥근 형태였는지 여부는 판명되지 아니하지만 문에 옥문과 대문이 있었고, 대문에는 표식이 마련된 관청의 문 즉 정문이지만, 옥문이라고 하는 것은 구내에서 소위 행형 구역과 비행형 구역을 구별하는 담장이 있고 그 담장에 설치된 행형 구역으로 통하는 문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보면 옥사에 대해서는 다른 건물과 동떨어지게 하기 위해 이를 둘러싼 담장을 설치하고 있었다고 추측되는 동시에 그 담장은 틀림없이 원형이었던 것에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감옥을 둥근 형태로 한 것은 옛날부터 자연히 관례가 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육전조례(六典條例)의 규정 및 종로 감옥에는 개축 직전까지 둥근 담장을 설치한 것 등의 점에서 생각하면 이와 같이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원형에는 2종류가 있고 그 하나는 감옥 전체의 바깥을 원형으로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감옥의 구내에 다시 감방 구역 또는 행형 구역을 구획하기 위해 안쪽 담장을 설치하는 경우 그 안쪽 담장만을 둥근 형태로 한 것이다. 그리고 전옥서는 후자에 속하는 것이었다.
김성기 목사 <세계로교회>
한국교도소선교협의회 대표회장
법무부 사)새희망교화센터 이사장
대한민국새희망운동본부 대표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