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야 어느 곡이나 다 은혜롭지만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는 곡은 제목만 들어도 입가가 위로 치켜 올라간다. 얼핏 듣기에는 아유 나는 받은 복이 있어야 세어 보든가 말든가 하고 시큰둥해질지 모르지만 은혜받으면 듣기만 해도 입이 저절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곡이다.
감기 정도만 앓고 지나간 한해, 아이들이 별 사고 없이 잘 자라준 복, 크게 빚지지 않고 산 한해, 헐벗지 않은 복, 먹고 남아 음식을 많이 버려서 오히려 회개 기도할 정도의 살림살이, 큰 부자는 아니지만 일용할 양식을 걱정하지 않고 사는 생활, 일자리가 없어서 난리들인데 직장에 출근할 수 있는 복, 1등은 아니지만 학교에 잘 다니고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을 둔 복, 세기로 들면 손가락을 몇 번씩 폈다 접어야 할 정도가 아니던가? 그중 으뜸 복은 아무래도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복이 아닐까 한다.
생각하기 나름이 인생사인데 이것들을 거꾸로 해보라. 얼마나 짜증날 일들인가 말이다. 현대인은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게 아니라 상대적 빈곤감으로 인해 상처받고 산다는 것은 일찍이 알려진 일이다. 나는 하나인데 저 사람은 둘을 가졌다는 것이 나를 불행하게 한다. 이런 덫에서 자신이 빠져나오지 못하면 그는 영원히 불행할 수밖에 없다. 내 친구 아무개는 코가 예쁜데 내 코는 이게 뭐람, 이 아니라 저 아이는 코가 예쁘지만 나는 눈이 예쁘잖아? 라고 생각하면 같은 일이지만 조금도 속상하지 않고 오히려 유쾌한 상상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가 있다.
추수감사절이다. 한해 추수에 감사하는 데서 비롯됐다지만 우리는 이날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한해의 모든 일에 대한 감사로 예배드린 지 오래되었다. 사람은 아주 풍요로울 때 감사하기 쉽지 않다. 부족한 듯할 때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금세 감사를 드리지만 모든 것이 넘쳐날 때 여간해서 감사드리기 쉽지 않은 일이다. 꼭 마음이 교만해서가 아니라 풍족하면 무엇이 더 생겨도 크게 감동받지 않게 되어서 그런 것 같다.
이제 마음을 내려놓고 받은 복을 세는 사람으로 살아보자. 국이 없고 밥만 있을 때 그 밥에 대해서 감사하면 국이 생기는 복이 따라올 수 있다. 그것을 우리는 믿고 감사하면 그만이다.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