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향기] 박기상 장로 (영등포노회, 시온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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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잇는 신앙의 길, 한 가문이 남긴 100년의 믿음과 헌신

박기상 장로, 신앙 유산 담은 ‘가족 신앙 역사관’ 만들어

한국교회 역사 속에는 교회를 세운 이들의 헌신뿐 아니라 그 믿음을, 대를 이어 지켜온 ‘신앙의 가문’들이 있다. 그들은 시대마다 다른 도전을 겪었지만 변함없는 복음의 중심을 붙들며 신앙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았고, 시대의 등불이 되어 한국교회의 뿌리를 지켜왔다.
그 가운데 봉서교회(현 대봉교회)를 품고 목회자와 장로, 선교사를 배출하며 ‘신앙명문’의 길을 걸어온 가문이 있다. 그 중심에는 오늘도 그 신앙의 정신을 굳건히 지켜가고 있는 박기상 장로(영등포노회, 시온성교회)가 서 있다. 또한 박기상 장로와 아내 김현숙 권사는 청년부 회장과 부회장으로 만나 결혼해 믿음의 대 잇기를 가정의 중요한 사명으로 여겼다.
특히 박기상 장로는 조부가 사용하던 100년 전의 성경과 신앙서적, 기록물들을 한곳에 모아 ‘가족 신앙역사관’을 만들어, 가문을 이어온 신앙의 유산을 후대에 체계적으로 전하고 있다. 이 역사관은 단순한 자료 보관을 넘어 세대를 관통해 이어온 믿음의 향기와 한국교회 초기의 순수한 신앙 정신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언’이 되고 있다.
“2004년 여름 전국장로수련회에서 3대 장로 표창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께 감사하다고 전화를 드렸어요. 아버지께서는 도리어 저에게 신앙을 이어받아 장로가 된 것이 감사하다고 하셨지요. 신앙을 전해주었어도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신앙의 대가 끊겼을 텐데 신앙을 이어주어서 감사한 일이고, 가장 큰 효도는 신앙의 대를 이어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이 신앙을 잘 전수하기 위한 마음은 ‘가족 신앙역사관’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박기상 장로의 삶과 신앙은 단지 한 사람의 이야기라기보다 한 세기가 넘도록 이어온 믿음의 유산에 대한 살아있는 증언이자, 오늘의 한국교회에 던지는 조용한 메시지다.

믿음의 뿌리, 봉서교회(현 대봉교회)의 시작

박기상 장로의 신앙 뿌리는 1920년대 초 전남 고흥의 한 마을에서 시작된다. 그의 조부 박귀조 장로(호 원빈·元彬)가 복음을 받아들인 것이 그 출발점이다.
“개화시대에 한글을 가르치며 덕망이 높았던 조부님은 1924년 미국남장로교 크레인 선교사와 목영석 목사의 전도로 2시간 만에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깨닫자 곧장 믿음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복음을 듣고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샌 끝에 ‘문하생 30명의 청년들과 함께 십 리 밖 관리교회를 1년 동안 다니며 배웠습니다. 배우는 과정에서도 직접 전도하고 설교하며 마을에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박 장로의 회고 속에는 조부 신앙에 대한 깊은 경외와 감사가 배어 있었다.
1925년 박귀조 장로는 사랑채를 예배처로 내어놓았고, 1927년에는 초가집 14평을 앞마당에 지어 교회를 세웠다. 이것이 바로 봉서교회의 시작이다. 이후 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순천노회에 가입하며 지역 복음화의 중요한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단지 교회를 세운 것에 그치지 않았다.
“마을 사람에게 할아버지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가르치셨어요. 일제 신사참배 탄압에도 굴하지 않는 원칙을 지켰으며, 해방과 여순사건, 6·25전쟁, 좌익·우익의 대립이 극심했던 혼란의 역사 속에서도 마을에 대립과 희생이 없었던 것은 모두 그분의 신앙적 리더십 덕분이었습니다.”

신앙의 계승, 세대가 세운 믿음의 족보

박귀조 초대 원로장로의 신앙유산은 그의 자녀들을 통해 힘 있게 이어졌다. 큰아들 박병식 2대 원로장로, 둘째 박병학 목사, 셋째 박병두 집사, 딸 박병덕 권사, 넷째 박병석 목사 등 형제자매 모두가 신앙의 길을 걸었다. 이들의 자녀들도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집사, 사모 등으로 교회를 섬기며 수십 명의 후손이 세대를 이어 신앙을 실천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교단이 분열되던 1959년 통합과 합동의 갈림길에서도 끝까지 통합 측에 남아 교회의 정체성을 지켜내셨어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분열을 반대하며 교단의 신학적 중심을 지키려는 신앙적 판단이셨어요.”
박기상 장로의 아버지 박병식 장로는 가문의 신앙정신을 삶으로 증언한 인물이었다. 대봉교회 장로로 54년간 시무하며 교회를 지키는 한편, 지역 사회 복음화와 다양한 봉사 활동을 통해 ‘믿음은 섬김’이라는 삶의 신조를 실천했다. 박 장로 내외의 집은 늘 복음의 전진기지였으며, 그 신앙 위에 세워진 대봉교회는 지금도 마을 신앙의 중심지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현재까지 이 가문에서 배출된 목회자와 장로 등 항존직이 수십 명에 이르며, 박기상 장로가 마련한 가족 신앙 역사관에는 이름보다 먼저 ‘믿음의 흔적’이 기록되어 있다.
“저의 큰형님 박기열 3대 원로장로님은 33년 동안 대봉교회를 섬기고 계세요. 할아버지, 아버지, 큰형님까지 3대 장로가 한 교회를 섬겼다는 것은 저의 제일 큰 자랑이에요.”

가정에서 이어진 신앙의 전수

박기상 장로와 김현숙 권사는 믿음의 대 잇기를 가정의 중요한 사명으로 여기며, 나름의 가정 신앙문화를 만들어왔다. 유치원 때부터 결혼 전까지 두 자녀가 외출하기 전에는 꼭 끌어안고 기도해 주었고, 초·중학생 시절에는 3년간 성경 과외를 시켰다. 가정예배를 정착시키기 위해 일천번제 가정예배를 두 번, 총 이천 번의 가정예배를 함께 드리기도 했다. 두 자녀는 신앙의 터 안에서 잘 자라주었다.
“큰딸은 학창 시절 중고등부 임원, 청년부 회장으로 교회를 섬겼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찬양대원으로 활동했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유년부 교사로 섬기고 있어요. 현재는 같은 청년부 회장 출신 남편과 함께 신앙의 가정을 이루었어요. 아들도 교회에서 중고등부 회장, 청년부 회장으로 섬겼고 대학 시절에는 CCC에서 활동했으며 지금은 청년 예배 찬양팀 리더로 섬기고 있어요.”

총회 다음세대 신앙전수 모범가정 시상식에서 가족들과.

신앙의 결단, 어머니의 기도와 사업의 헌신

1988년, 박기상 장로의 삶에는 큰 전환점이 찾아왔다. 늘 전도와 심방으로 바쁘게 지역을 돌보던 어머니가 과로로 쓰러져 세상을 떠난 것이다. 박 장로는 “어머니를 병원비 때문에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으로 남아 있다”고 회고했다.
그때 느낀 무력감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박 장로는 “돈 때문에 치료받지 못한 어머니를 보고 하나님의 일을 더 넉넉하게 감당하려면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하며, “하나님께 물질로 쓰임 받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소명이 제 마음 깊이 자리 잡았다”고 했다.
박 장로는 대출을 받아 30평 남짓한 작은 공장을 세웠다. 보일러 플랜지를 생산하는 ‘보람산업사’다. 회사 이름에는 아버지가 늘 강조하시던 시편 1편의 ‘보람된 삶’이라는 믿음을 담았다.
창업 초기 박 장로는 다섯 가지 신앙 원칙을 세웠다. 첫째, 1년에 한 곳 이상 농어촌교회와 선교지를 돕는다. 둘째, 소득의 3분의 1은 하나님의 일에, 3분의 1은 사회와 가정에, 3분의 1은 사업에 쓴다. 셋째, 주일성수를 철저히 하고 불의한 거래를 하지 않는다. 넷째, 자녀에게 영·수 과외보다 먼저 성경을 가르치고 매일 가정예배를 드린다. 다섯째, 직원들과 함께 예배하며 정직한 기업문화를 세운다.
이 원칙은 38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함없이 지켜지고 있다. 보람산업사는 농어촌 미자립교회, 선교지, 기관 등 50여 곳을 정기적으로 후원한다. 하지만 사업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공장 화재와 거래 실패, IMF의 위기 속에서도 박 장로는 “기도가 답이었다”고 고백하며, “기도하며 순종할 때마다 길이 열렸다. 사업은 제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주인은 하나님”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기상 장로의 사업장은 단순한 직장이 아니라 ‘예배의 자리’이자 ‘선교의 현장’이 되었다. 직원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 매일의 감사기도, 거래 전 묵상 시간은 보람산업사 안에 복음적 가치를 드러내는 기업문화를 만들었다.

박기상 장로의 사업장 보람산업(주) 전경

교회를 넘어 총회로, 섬김의 리더십

박기상 장로의 헌신은 교회 안에 머물지 않았다. 40여 년 전 교회학교 교사로 사역을 시작한 박 장로는 남선교회, 장로회, 선교회, 여러 연합기관에서 봉사하며 섬김의 폭을 넓혀 왔다. 이후 영등포노회 부노회장, 총회 회계, 총회 재정부장, 교회학교 중고등부 전국연합회 회장 등 교단의 주요 직책을 맡아 언제나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조정하고 채우는 역할을 감당해 왔다. 그 과정에서 박 장로는 행정적 능력뿐 아니라, 사람을 세우는 평화의 리더십으로 평가받았다.
박 장로는 “교회와 총회가 건강하려면 정치보다 영성이 앞서야 한다”며, “합력과 화평의 리더십이 총회의 본질”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총회와 노회 안에서 예산·재정·인사 문제 등 갈등이 일어나는 상황마다 박 장로는 중재와 설득으로 균형을 이끌어내며 ‘피스메이커’로 불렸다.
박기상 장로는 총회 임원과 각 부서에서의 직책을 명예가 아닌 섬김의 자리로 이해한다. 총회가 정치의 중심이 아니라 신앙의 중심으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확신도 분명하다.
“‘직분’보다 ‘책임’이 우선입니다. 저는 일하기 위해 총회, 노회,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며 헌신의 과정 없이 명예를 구하지 않습니다.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저의 섬김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소명이 있다면 총회뿐 아니라 한국교회를 위해 준비된 사람으로 쓰임 받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앙의 기록, 믿음의 향기를 남기다

박기상 장로는 새로 이사한 집의 한 방을 ‘가족 신앙 역사관’으로 꾸몄다. 그 안에는 조부 박귀조 장로가 사용했던 성경, 성경교리, 신약 주석 등 1900년대 초의 귀한 자료들이 정성스럽게 보관되어 있다. 이 유산은 단지 가문의 기록이 아니라 한국교회 초기의 순수한 신앙과 그 시대의 영적 숨결을 증언하는 살아 있는 역사다.
“신앙 역사관을 만든 이유는 예배와 설교, 교회 개척과 헌신의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후손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기 위함입니다. 우리 가문의 뿌리는 믿음입니다. 후손들이 이름보다 ‘신앙의 향기’를 먼저 물려받기를 바랍니다.”
가문의 신앙적 뿌리는 박귀조 장로에게서 출발한다. 1886년 출생한 그는 1926년 세례를 받았고, 그 기록은 1955년 작성된 세례교인명부에 남아 있다. 박기상 장로는 빛바랜 명부를 꺼내 보이며 “이 명부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우리 가문이 신앙으로 뿌리내린 첫 증거”라고 말했다.
박 장로는 이어 교회 초기 상황과 농촌 교회 특유의 철저한 공동체 정신을 설명하며 “작은 시골 교회였지만 회의록 하나하나를 남겼다”고 말했다.
“할아버지 때는 목사님이 안 계셔서 순회선교사님들이 와서 당회장을 맡아 회의를 하셨고, 선교사가 오지 않는 때에는 장로님이 제직회 같은 회의를 이끌었습니다. 그때 우리 할아버지는 임시 의장을 맡았지요. 목사님이 없는 시절이 길어도 할아버지는 ‘말씀이 끊기면 교회도 끊긴다’며 예배를 단 한 번도 비우지 않으셨어요.”
역사관 안에는 1915년, 대정 4년에 발행된 교재를 비롯해 조부가 설교 준비에 사용했던 ‘조선예수교장로회 성경교리’, ‘예수행적공부’, ‘신약주석’ 등 1910~1930년대의 귀한 책들이 보관되어 있다. 또한 1934년 발행된 ‘대한예수교장로회 50년사’를 비롯해 한국장로교 100년의 발자취 등 교단의 초기 자료도 함께 소장되어 있다.
박 장로는 “아버지가 노회나 총회에서 돌아오시면 회의록이 늘 방 안의 낮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며, 이러한 경험이 훗날 교회와 노회, 총회, 장로회 관련 자료를 정리하는 삶의 기초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박 장로는 가문의 신앙 여정을 한 권의 기록으로 남기는 일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조부 박귀조 장로의 호를 따라 ‘기독원빈공파(基督洹彬公派)’를 세우는 작업도 준비하고 있다. 혈연 중심의 족보가 아니라 ‘신앙 중심의 족보’를 남기기 위한 새로운 시도이다.
“문중에서 인정하든 안 하든, 우리 가문은 신앙 족보로 이어질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가족을 믿음의 대로(大路)에 세우고 싶습니다.”
박기상 장로의 가족 신앙 역사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선다. 한 세대가 다음세대에게 믿음을 건네기 위해 흘린 작은 헌신과 눈물의 기록은 한국교회 초기 신앙의 기초를 이루었고, 한 마을의 믿음을 지켜낸 기둥이 되었다. 이 공간은 가문을 위한 역사가 아니라 교회를 위한 증언, 그리고 세대가 어떻게 믿음을 지켜왔는지 보여주는 산교육의 장이다.

한쪽에 자리 잡은 가족신앙역사관, 조부 박귀조 장로가 사용했던 ‘셩경도리’, ‘셩경디지문답’, ‘예수행젹공부’, ‘신약전서대집’, ‘강대보고’ 등 1900년대 초의 귀한 자료들과 아버지의 신앙유산 등 3대에 걸친 신앙행적이 전시되어 있다.

‘기록하는 신앙’의 소명

박기상 장로는 수십 년 동안 교회 자료와 노회, 총회 기록, 그리고 사회 변화를 함께 정리해 왔다. 박 장로는 1984년부터 다닌 시온성교회 관련 자료들을 비롯해 교회 50년사, 영등포노회 장로회 70주년 기념집, 한국교회사 요약집 등을 직접 편집·제작해 왔다. 사회적으로도 역대 정권과 사회 변화의 흐름을 꾸준히 기록해 왔으며, 최근에는 교회학교 중고등부 전국연합회 50년사 편찬위원장을 맡아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교회의 역사는 곧 나라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이 땅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박기상 장로의 서재에는 수십 권의 헌법책, 회의록, 교단사, 교회학교와 선교 자료가 빽빽히 꽂혀 있다. 박 장로는 신앙의 역사를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세대를 잇는 신앙의 흔적으로 여기며 정리해 왔다.
“신앙은 단절되지 않습니다. 가문과 교회, 그리고 민족의 역사를 이어주는 고리입니다. 우리 집은 140년의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믿음의 계보를 다음세대에게 남길 차례입니다.”

신앙은 유산이 아니라 삶

박기상 장로의 인생은 ‘믿음의 이야기’이자 ‘헌신의 증언’이다. 박 장로는 교회 안의 직분자이기 전에, 한 가문의 신앙을 지켜온 증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조부의 순수한 신앙, 부친의 섬김, 가족들의 믿음의 실천, 그리고 자신의 헌신과 자녀들이 신앙을 이어가는 신앙의 삶까지 한 가문을 흐르는 신앙의 강물은 오늘도 삶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박 장로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기업’으로, ‘총회를 위한 믿음의 통로’로 서 있다. 또한 박기상 장로의 걸음은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신앙의 본질을 바라보게 한다.
특히 100년의 시간을 지나 이어진 한 가문의 신앙 여정은 한국교회가 걸어온 길을 비추는 작은 거울과도 같다. 단단하고도 따뜻한 신앙의 향기가 세대를 건너 이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박기상 장로의 삶은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이런 믿음의 기록들을 정리하다 보니, 단순히 가문의 역사를 보존하는 일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한 세대를 일으키고 다음세대로 이어가신 은혜의 흐름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그냥 전해지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눈물, 헌신, 결단 위에 이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은 단순히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입니다. 삶과 가정, 일터와 교회 속에서 피어나는 믿음의 향기는 후손들에게 이어주어야 할 그것이 가문의 복음입니다.”
/박충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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