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지혜] 인간은 얼마나 지저분한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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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은 인간이 얼마나 지저분하고 모순적인 존재인지를 냉정하게 드러낸다. 인간은 죄와 벌이라는 두 축 사이에서 흔들리며, 그 과정에서 본성의 추악함과 동시에 구원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간이 불완전하고 자기 파괴적인 이유는 단순한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이성과 욕망, 선과 악이 뒤섞여 있는 본성 때문이다.

첫째, 인간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요인은 오만한 이성과 그 이면에 숨겨진 욕망이다.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비범한 인간은 법을 초월할 권리가 있다’는 사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그는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 믿으며 타인의 생명을 희생할 권리가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의 이성은 결국 욕망을 정당화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이처럼 인간은 죄악을 합리화할 때 가장 추악해진다. 

둘째, 사회적 약자를 착취하고 짓밟는 탐욕이다. 루쥔은 약혼녀 두냐를 경제적으로 종속시키고, 그녀를 영원히 감사하게 만들려는 비열한 의도를 품었다. 이는 권위와 돈을 이용해 타인의 존엄성을 짓밟는 탐욕적 속물근성을 드러낸다. 라스콜니코프가 살해한 노파 전당포 주인 역시 가난한 이들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 같은 인물이었다. 이들은 법과 제도를 이용해 타인의 고통 위에서 자신의 부와 지위를 쌓아 올리는 지저분한 인간 군상이다.

셋째, 쾌락에 침잠해 자아를 파괴하는 방탕함이다. 스비드가일로프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끝없는 육체적 욕망과 도덕적 해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는 어린 여성에게 집착하고, 결국 모든 희망을 잃고 자살이라는 파국을 맞는다. 이는 인간이 죄를 알면서도 쾌락을 추구하며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자기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넷째, 무기력한 환경에 굴복하는 비굴함과 무책임이다. 소냐의 아버지 마르멜라도프는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임에도 알코올 중독에 빠져 가정을 파괴한다. 그 결과 소냐는 가족을 위해 몸을 파는 존재가 되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깨끗해질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용서는 하나님의 주권이다. 교회는 죄인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라스콜니코프를 회개의 길로 인도한 소냐처럼, 교회는 법이 아니라 사랑으로,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가르치는 자세가 아니라 함께 죄인된 자리에서 울며 회개에 동참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교회여, 소냐가 되라!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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