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실로 이방인을 위한 복음 선교사로 구별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회심한 후에는 자신의 모든 희생도 주님께 감사를 드리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사도는 성령과 함께한 그리스도의 위대한 종이었다. 복음을 위한 그의 열정은 지혜와 중용(中庸)으로 자제(自制)되는 모습이 사도의 서신 곳곳에 배어 있다. 여기에 사랑과 겸손, 자애롭고 섬세함이 더해졌다.
고린도전서 13장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정신 모든 곳을 품고 있다. 사도가 받은 성령의 감화는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게 해준다고 고백한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은 하나님의 우주적인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가 중심인 성경을 연구했을 것이다. 이 3년은 그리스도의 공생애(公生涯) 3년과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랐던 3년과 비견(比肩)된다.
사도는 복음의 진리가 주는 자유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복음을 전파했다. 복음은 당대의 문명 세계, 로마 제국을 향해 승리를 거두었다. 사도가 쓴 서신서는 복음을 해설하고 변호하며 교회를 세우게 했다. 인생 길을 다 마치고 숭고한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사항들을 성령의 감화 속에서 묵상하고 기록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컨데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몇몇 사람을 구원코자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이 되었고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이 되었으며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코자 함이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종이라.”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부인한다. 당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대개 가난한 하층민들이었다. 이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게 하기 위해 장막 짓는 기술로 생계를 유지했으니 실로 고결한 인품이다. 그는 평생을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은혜에 대해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다. 오늘 모든 목사님, 장로님 그리고 직분자들이 본받아야 할 자세라고 하겠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며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그는 실로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살았다.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마다 가슴이 저리고 눈물이 난다. 그리고 부끄러워진다. 불구하고 사도의 마음은 언제나 기쁨과 평안이 가득했다. 로마 옥중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권면한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바울 사도의 공생애는 AD 40~64년까지 계속되었다. 예루살렘을 다섯 번 방문했고 가이사랴와 로마에서 적어도 4년의 옥고(獄苦)를 치렀다. 옥중에서 골로새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빌레몬서를 썼다. 그가 3차에 걸쳐 선교 여행을 했다. 약 1만1천~1만2천500km로 추정하고 있다. 대부분 걸어서 다닌 거리이다.
오스티아 가도(街道, Ostian Way)가 지나가는 폰타나(Fontrna)에서 참수형(斬首刑)을 당함으로 순교를 했다. 그후 사도의 유골은 로마 외곽의 성 파올로(San Paola) 성당에 이장(移葬)되었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