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한국교회 순교자들 (4) 정일선 목사 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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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의 기억 본받아 오늘을 살아내는 교회

이들은 선배 목사와 성도들을 기억해 그들을 본받아 순교적 삶을 살아가려고 최선을 다했다. 순교자의 열매는 더 굳건한 교회요, 성도들은 눈물로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기념하며 본받아 살아갔다.

산정현교회는 민족주의 운동과 교육의 산실이었다. 신사참배 반대 운동의 요람이었고, 조만식 장로를 주축으로 한 물산장려운동의 효시였고, 민족의 요구를 무시하지 않고 실천한 교회였다. 그러기에 아무것도 아까워하지 않고 내어놓은 순교신앙으로 이어졌다.

후암동에 세워진 피난 교회인 산정현교회는 교단을 초월해 연합해서 지역을 섬기고 있다. 연합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주민들의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졌다. 주민들에게 후암동에 살므로 인생의 복된 변화를 얻고 희망을 찾으며 자녀들이 마음껏 놀며 공부하는 마을로 만들어가는 꿈을 심어주길 원하고 있다. 

목회자 김호민 목사는 목숨으로 순교한 이들이 있는 교회는 순교신앙의 본을 받아 살아가는 것이 오늘 교회의 사명이라고 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성경에서 순교한 이들을 보면 복음의 증인이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는 증인이었다. 이 증인이라는 어휘가 시대를 지나면서 증인으로 살다가 죽음의 증인이 된 것이었다. 증인이라는 어휘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순교자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증인들이었다. 성경에는 순교자라는 단어가 없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다가 피를 흘려 죽은 이들을 순교자라고 했다.

공산주의에 맞선 교회 목사들은 순교를 각오하고 싸움으로 목사와 교회 지도자들이 수없이 순교했다. 1950년 북한이 남침해 부산까지 밀고 내려갔을 때 남한으로 피신했던 교회 목사들, 그리고 남한 출신의 목사들을 무참하게 죽였다. 그 수는 일본 신사참배에 반대하다가 순교한 교회 지도자들보다 몇 배나 될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아직도 북한에서 순교자들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요 15:18-23).

이승하 목사

<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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