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이사야 42장 3절)
중1 남학생, 또래에 비해 큰 키에 앞이마가 반쯤 보이는 일자 머리, 색깔이 다른 이어링과 링 두 개가 연결된 메탈 반지를 낀 청소년이 엄마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왔다. 이 남학생은 최근 학교 심리검사 1, 2차 평가에서 자살 사고가 높게 보고되어 정밀 검사 및 진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으로 의뢰되었다.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엄마와 함께 내원한 것이다.
엄마의 정보에 의하면 자녀는 원하지 않았던 임신(unwanted baby)으로 8개월이 되어서야 유산을 포기하고 ‘이제는 낳을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에 출산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렇게 태어난 아들은 밤에 보채지도 않고 잘 자고, 낮에도 울지 않아 키우기 쉬운 아이(easy baby)였다. 성격이 꼼꼼하고 눈치가 빨라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다만 워낙 체격이 마르고 외모 스트레스가 심해 여름에도 반팔이나 반바지는 결코 입지 않았다고 한다. 싫증이나 짜증을 잘 내고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는 항시 두려움이 크다고 했다. 친구들은 주로 여자아이들이었으며, 체격이 왜소하고 곱상해 ‘네가 있어 우리 학교가 남녀공학이야’라는 친구들의 조롱과 놀림을 받고 자랐다. 반면 여동생은 태권도 선수이며 활발하고 명랑해 부모님이 자기보다 여동생을 더 예뻐한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나란히 진료실 의자에 앉아 있기에 먼저 엄마에게 물었다. 아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어떤 점을 도와주면 좋을지. 내 질문이 끝나자마자 엄마는 강하고 큰 목소리로 “아무 문제 없는데요”라고 답했다. 엄마의 재빠른 대답이 믿음이 가지 않아 재차 질문했다. 학교 검사에서 자살 사고가 보고되어 병원까지 왔는데, 그동안은 몰랐더라도 지금 생각해보면 짐작 가는 문제가 없느냐고 말이다. 그래도 엄마는 강하고 빠른 말투로 똑같은 대답을 했다.
황원준 전문의
<황원준정신의학과 원장•주안교회 장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