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지혜] 성탄의 정신으로 송구영신을!

Google+ LinkedIn Katalk +

도스토옙스키의 대작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제5권 5장에는 ‘대심문관’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 속 인물인 이반 카라마조프가 동생 알료샤에게 자신이 구상한 ‘서사시’라며 들려주는 이 이야기는 16세기 스페인 세비야를 배경으로 한다. 고통받는 민중을 가엾게 여긴 예수가 잠시 지상에 다시 내려왔다는 가상의 설정이다. 그러나 교회 권력의 정점에 선 90세의 노(老) 대심문관은 예수를 감옥에 가두고 화형을 선고하며 섬뜩한 독설을 퍼붓는다.

대심문관의 비판은 예수가 광야에서 사탄에게 받은 세 가지 시험과 정면으로 맞닿아 있다. 그는 예수가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사탄의 제안을 거절하며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었지만, 정작 나약한 대중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가 아니라 당장의 배를 채워줄 ‘지상의 빵’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높은 성전에서 뛰어내려 신성을 증명하라는 ‘기적’의 유혹과 세상 모든 나라를 다스릴 ‘권세’를 가지라는 유혹을 예수가 거부함으로써, 인간에게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지웠다고 비난한다. 그리고 인간은 비겁하고 나약한 존재이기에, 교회는 예수가 외면한 사탄의 유혹들을 받아들여 기적과 권위로 대중을 안심시키고 통제해 왔음을 당당히 변명한다. 신의 이름을 빌려 사탄의 유혹을 정당화시킨 이 기만적 논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와 종교가 직면한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현재 한국교회와 사회의 모습은 대심문관과 닮아있다. 한 손으로 빵을 주고, 다른 손으로 민중의 자유를 빼앗는 교회 안팎의 권력자들은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반박하며 사탄의 유혹에 매몰되어 있다. 권력의 자리를 버리고 스스로 빵이 되어 만민에게 자유를 주신 예수 성탄의 정신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는 이 이야기 끝에 강력한 반전을 제시한다. 대심문관의 긴 궤변이 끝난 뒤, 예수는 단 한 마디의 반박도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말없이 다가가 노인의 메마른 입술에 입을 맞춘다. 

이 ‘침묵의 입맞춤’은 논리로 이기려 하지 않고, 정죄로 심판하지 않는 신적 사랑의 정점이다. 그것은 증오의 논리를 무력화하고 완고한 갈등의 벽을 허무는 신성한 힘이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문턱에서 우리는 대심문관이 탐했던 ‘권력의 옷’과 ‘욕망의 빵’을 과감히 보내야 한다. 그리고 예수의 입맞춤처럼, 따스한 온기로 위선을 꾸짖고 진리를 증명하는 삶의 자세를 맞이해야 한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