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선교-소명의 사이렌] 홀로 외롭게 죽어간 노인 뉴스에서 소명을 찾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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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책임과 돌봄의 부재이다. 교회가 잃어버린 ‘약한 자를 지키라는 부르심’이다. 노인은 독거상태로서 아프고 혼자였으며 의지할 곳도 없었다. 성경은 반복해서 이렇게 명령한다. 

즉,“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흠 없는 경건이다.”(약 1:27) “너희 중에 약한 자를 도우라.”(살전 5:14) “서로의 짐을 지라.”(갈 6:2) 교회는 ‘한 사람’을 책임지는 공동체이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많은 이들은 홀로 죽음(lonely death)의 위험 속에 내버려져 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다.“교회는 지역의 약한 이들을 정말 돌보고 있는가?” “우리 주변에 연락이 끊긴 이들은 없는가?”말이다. 

넷째는 ‘골든타임’이 생명보다 중요할 수 없다는 점이다. 성경적 생명 윤리는 무엇인가? 119수보자가 요청한 것은 ‘정확한 주소’였지만,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막 12:31) “사람의 생명이 무엇보다 귀하다.”(마 12:12) 

절차가 생명을 이겨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규정이 생명을 앞설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안식일 규정을 어겨서라도 생명을 살리라고 하셨다.(마 12:11–12) 현대 사회에서 “주소가 틀렸다”는 말이 “나는 당신을 도울 수 없다”는 선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면 결론적으로 바로 이 사건이 기독교인에게 적용되는 교훈이다. 

즉,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1) 이웃의 작은 신호에도 귀를 열어야 된다. 고독사는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작은 단절, 작은 도움 요청, 작은 이상 신호가 있다. “보라, 너희는 깨어 있으라.”(막 13:37) 깨어 있다는 것은 관찰하고 돌보는 책임이다. 

2) ‘선한 사마리아인’은 선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의무다. 불편하더라도, 시간이 들더라도, 사람을 살리는 일에 기독교인은 먼저 움직여야 한다. 

3) 교회는 지역의 약한 이들을 보호하는 생명지킴이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독거노인, 장애인, 디지털 취약자…그들의 주소록, 긴급 연락망, 방문 관리 등 말이다. 이는 교회가 지역사회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영역들이다.

4) ‘내 일이 아니다’라는 태도에서 회개하라. 레위인·제사장이 외면한 이유도 이것이었다. “누구든지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약 4:17) 

5) 생명 앞에서는 어떤 제도도 핑계가 될 수 없다. 기독교인은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그의 죽어가며 마지막 ‘부르짖음’은 우리에게 다시 메시지로 다가온다. “너희는 서로의 생명을 책임지는 공동체이냐?”그 질문 앞에서 교회는 금식보다, 예배보다, 행사보다 정말 필요한 ‘이웃 사랑의 실천’을 회복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김성제 시인

<소방청 인천부평소방서, 재난과학박사, 우리응답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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