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신앙의 자리] 종로 (20) “갈등 넘어 공간으로 세워진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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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과 천민의 벽 허물고 세워진 1913년 승동교회 예배당

승동교회 ③ (서울중앙교회)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의식까지 바뀌어야 했지만 오랫동안 내려온 인습을 내려놓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노예제도를 가지고 있었던 서양사회가 그 제도를 폐기하는 과정에서 전쟁까지 해야 했다면 승동교회에서 겪었던 양반과 천민의 갈등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결과적으로 승동교회의 백정출신 박성춘이 장로가 되는 것을 계기로 양반 신분을 교회 안에서도 유지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양반마을(북촌)에 형성된 안동교회로 옮겨감으로써 아픔을 남겼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복음을 통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나라가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는 식민지를 겪으면서 변할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 있었다고 하면, 서양적인 의식이 성경이 전해지고, 교회가 그것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먼저 경험하면서 교회 내에서 경험하게 되는 갈등의 과정을 극복하면서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바로 그즈음 승동교회는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한옥을 개조해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400여 명의 신자가 예배를 드리기는 턱없이 비좁았다. 따라서 새로운 예배당이 절실하게 필요했기에 대규모 건축을 시작했다. 그것은 한일병탄이 강제로 이루어진 1910년의 일이다. 공사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무래도 건축 자재나 장비, 기술 인력이 절대 부족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100평 규모의 고딕양식의 서양식 예배당을 짓는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2년이나 걸린 건축기간이 지나고 1913년 2월 16일에 봉헌예배를 드렸다. 지금은 빌딩숲에 가려서 찾기조차 힘들지만 당시 종로에서 이 예배당은 가장 크고 높게 보이는 것이었다.

예배당 건축면적은 100평으로 지하와 지상 2층으로 지었지만, 실제로는 예배당 내부가 2층 높이로 높기 때문에 지상 3층 이상의 느낌을 준다. 기단부분은 화강암으로 쌓았고, 전체 벽은 붉은 벽돌을 사용했기 때문에 안정감을 주는 전형적인 고딕양식의 건물이다. 이 예배당의 구조와 건축양식에 대해서 이덕주(김신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평면은 장방형이며 지붕은 십자가형으로 되어있는데 남북축은 단층 지붕으로, 동서축은 고창층(高窓層)이 생략된 2층 지붕 형태로 꾸며 변화를 주었다. 그 결과 전형적인 3랑식(三廊式) 라틴 십자형 건물에서 중앙 교차부(交叉部)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 즉 후진(後陳)과 측랑(側廊), 신랑(身廊)부분을 잘라낸 형태가 되었다. 측랑에 해당하는 동서 양측의 벽면에 반원형 아치 창문을 위층에 3개, 아래층에 4개, 모두 7개씩 설치했고, 남측의 양쪽으로 두 개 남·녀 출입문도 반원형 아치 형태로 꾸몄으며, 그 가운데 반원형 아치 형태의 창을 설치했고, 그 위에 십자 창문틀의 원형 장미창을 냈다. 북측 벽에도 남쪽과 같은 크기의 원형 장미창을 설치했는데 건물 크기에 비해 창이 많은 것도 ‘빛의 예술’을 강조하는 고딕 건물의 특징이다.”

삼랑식 예배당의 전형은 천주교회 성당을 생각하면 쉽게 상상이 가능하다. 제단과 함께 신분에 따른 좌석이 나뉘어 있는 형태다. 그러나 승동교회 예배당의 외관은 삼랑식이지만 내부는 기독교 예배당으로 좌석구분이나 제단이 따로 있지 않았다. 오히려 내부는 기둥 없이 높은 공간으로 개방감을 더했고 기독교 예배당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렇게 넓은 예배당을 마련했지만 교회의 성장과 장안에 있었던 교회들의 연합 모임을 위해서 공간이 부족하게 됨으로 내부에 좌석을 추가로 설치하는 공사를 했다. 건물의 고가 높았기 때문에 남쪽 출입구 쪽과 동·서쪽 측면에 2층으로 좌석을 설치하면서 올라갈 수 있는 계단까지 만들었다. 

지금은 전체 원형만 확인이 가능하다. 해방과 6.25동란을 겪으면서 피난민들이 모여들었고, 서울의 인구가 팽창하면서 교세가 크게 늘어나면서 1957년에 건물을 확장하는 공사를 했기 때문에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처음 지었던 건물의 원형과 증축, 변형시킨 부분이 구별이 되기 때문에 알 수 있다. 확장을 하면서 원형은 훼손돼서 아쉽지만 이 예배당은 2001년 4월에 서울시 유형문화재 130호로 지정되었다.

이종전 박사

인천기독교역사문화연구원 원장 

개혁파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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