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 폴란드인 15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곳에 수북이 쌓인 어린이 신발과 주인을 잃은 머리카락 다발, 가스실에는 입을 벌린 시체들의 소각장이 있다. 수용소가 28개가 있는데 그중의 한곳에 마리아 콜베(1894-1941) 신부가 선종(善終)한 수용소는 11동(棟) 건물이었다. 폴란드 사람인 콜베 신부가 유대인에게 피신처를 제공했다는 사실이 발각되어 1941년 5월 28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잡혀왔다. 콜베 신부는 수용소에서 금지되어 있는 고해성사를 했으며 상담을 통해 수감자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그런데 수감자 중 1명이 탈출했는데 수용소 법칙에 한 사람이 탈출하면 10명을 아사(餓死), 즉 굶겨서 죽이는 방에 보냈다. 이때 어느 수감자가 울부짖으면서 “나는 아내와 자식이 있으니 죽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이때 어느 사람이 일어나 앞으로 나가더니 “내가 대신 죽겠습니다” 대신 저 사람을 놓아달라고 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콜베 신부였다. 이때 지휘관이 너는 누구냐고 물었을 때 콜베 신부는 나는 가톨릭 신부 콜베라고 했다. 다만 내가 죽기 전에 사제로서 남아 있는 9명의 영혼을 위해 사제를 드리도록 요청해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콜베 신부는 7월 9일 그들과 함께 11동 지하 아사 감방에 갇혔다. 그곳 지옥 같은 캄캄한 방에 수감되어 함께 기도하고 찬송을 불렀다. 지옥 같은 감방이 거룩한 교회와 천국으로 탈바꿈 했는데 이것을 지켜보던 간수들이 넋을 잃었다. 고통과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콜베 신부의 인도로 하나님의 품에서 생명을 마감했다.
마지막으로 콜베 신부는 자신의 사명을 다했다는 뜻으로 팔을 내밀었을 때 나치가 그의 팔에 독극물 주사를 놓아 8월 14일 숨을 거두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79년 6월 7일 콜베가 죽은 감방 앞에서 기도를 했으며 1982년 10월 10일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은 82세 노인으로 콜베 신부의 시성(諡聖) 미사를 집전했다. 콜베 신부의 수인(囚人) 번호가 적힌 16670번의 기를 들고 해마다 미사를 드려 희생을 기념했다.
김광식 목사
<인천제삼교회 원로>


